136. 하늘을 취하는 자들(창48:8-16)

관리자님 | 2023.09.08 20:00 | 조회 207

136. 하늘을 취하는 자들(48:8-16)

 

8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스라엘은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축복한다. 그들이 비록 애굽이라는 세상 한복판에서 탄생했지만 자기 아들, 즉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자로 삼고, 그들에게 축복한다. 이스라엘의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고,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의 속성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즉 이스라엘은 모두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이름이다. 이들은 세상에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 하나님이 주신 이름을 가진 자들이다. 그래서 그 이름대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는 삶을 산 자들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 개인의 삶을 산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이름대로의 삶을 산 자들이다. 하나님께 약속의 기업을 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자기 개인의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그 약속의 기업을 하나님과 함께 경영하는 삶을 산 자들이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것은 그들도 산 자의 삶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산 자들의 나라, 즉 하늘에 속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경영하는 삶을 살게 된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인 이스라엘의 축복은 죽은 자의 삶에서 산 자들의 삶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의 세상에서의 삶은 헛된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하늘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된다.

 

성령의 시대 이런 이스라엘의 축복과 같은 축복을 받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는 것과 같다. 성령세례는 죽은 자들의 삶을 산 자들의 삶으로 그 삶을 완전히 바꾼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따르면 산 자의 삶, 즉 영원히 기억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늘을 창조하는 삶에 동참하게 된다. 산 자들의 삶은 세상에서 하늘을 창조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하늘을 창조하는 삶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삶이다. 하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탄생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자들은 그들이 살아나기 전의 삶도 가치 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들이 죽은 자의 삶을 살 때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들도 필요하면 산 자의 삶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축복과 같은 축복을 받은 자들, 즉 세상에서 성령세례를 받고 산 자들이 된 자들도 실상은 옛사람의 습성이 배여 있는 육체 가운데 산다. 그들이 산 자들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혼에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들의 혼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는 방법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사람의 혼과 육체는 육체로 차원이 다른데 어떻게 대면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육체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도록 하신 방법을 주시는데 곧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은 BC 1,440년경 모세 시대부터 AD 100년 요한 시대까지 약 3,540년에 걸쳐 타락한 육체의 몸을 입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길을 만드셨다. 모세를 통해 모세오경을 기록하도록 하셨고, 마지막 사도 요한을 통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도록 하셔서 육체를 입은 사람들이 대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얼굴을 완성하셨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AD 90년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39권의 구약성경과 A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27권의 신약성경이다. 이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이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도록 글자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얼굴이다.

 

축복, 즉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의 혼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는 방법은 하나님의 얼굴인 기록된 성경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 성경을 단순히 열 번이나 스무 번 읽을 때는 하나님의 얼굴의 윤곽만 보이지만, 삼십 번, 오십 번 이상 넘어가면서 읽고 기도할 때는 그 얼굴을 통해 성령을 힘입어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 육적 시간대를 벗어나 영적 시간대로 들어가서 에덴동산의 시간대, 아브라함의 시간대, 모세의 시간대, 다윗의 시간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시간대도 들어갈 수 있다. 성령님이 기록된 말씀을 반복하여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을 신비한 세계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 시간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의 지식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적 지식을 초월하는 하늘의 지식이 그에게서 살아 움직이는 삶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령의 시대 축복을 받은 자들의 삶은 바로 이런 산 자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을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자들이라 부른다.

 

이런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자들은 비로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의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여 범죄한 사람들은 사실상 마귀라는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이 그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진정으로 그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들어오시면서 사람들이 비로소 강도 만난 이웃을 볼 수 있도록 하셨다. 강도 만난 이웃은 하나님을 대면할 대 성령님을 통해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보인다. 그 이웃의 상처가 무엇인지 보이고, 어떻게 치료하여야 할지 보이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웃의 아픔을 덮을 수 있고, 상처를 덮을 수 있는 자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그들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에 그들을 오히려 정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은 범죄하면서 악인이 되었다. 마귀의 속성이 들어가, 그 육체가 마귀를 반영하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이웃에게 강도와 같이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상처가 많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악인들은 바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꾀를 낸다. 그것 때문에 이웃에게 해를 가한다. 악인은 바로 우리들의 겉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바로 그 악인을 죽이고, 우리 안에 선한 자 하나님이 아들을 탄생시키신 것이다. 그 선한 자는 영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것이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 선한 음식을 먹는 자가 세상에서 복된 자이다. 시편 1편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복이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이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이스라엘은 그의 오른손의 축복은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에게, 외손의 축복은 첫째 아들 므낫세에게 돌렸다. 오른손의 축복은 하늘나라의 장자권의 축복이다. 이 하늘나라의 장자 권 축복은 하나님이 하늘나라의 기업 경영을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가나안 땅을 분배한 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막이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실로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과 장자 권과 같은 축복을 받는 것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것에 대하여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졌을 때 그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통하여 성취되도록 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 이스라엘의 아들로 되고, 축복을 받은 것은 이 시대 성령세례를 받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성령세례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다. 이 성령의 기름 부음은 사람마다 이스라엘의 오른손과 왼손의 축복과 같이 다를 수 있다. 이 시대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것은 모두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시지 않고 각자에게 맞는 하나님이 일을 하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속성이 사람마다 달 수 있다. 에브라임의 삶과 므낫세를 향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아들들 각자의 삶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다섯 달란트의 축복을, 또 다른 자들은 두 달란트의 축복을, 어떤 자들은 한 달란트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자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라 책망받을 수 있다. 에브라임은 결국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았지만 장자 지파에서 탈락한다. 그들의 자손들이 우상숭배의 길로 갔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이름이 요한계시록에서 빠지게 된다.

 

성령의 시대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상 구약시대의 장자 권의 권를 가진 것과 같다. 따라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진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모두 하늘나라가 되어 그들을 중심으로 하늘의 역사를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령의 기름 부음의 축복은 그것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 삶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하늘을 번창시킬 수도 있고,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무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의 선택이다.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스라엘의 두 아들에 대한 축복은 아브라함, 이삭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고 번식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성령의 시대 성령세례의 축복은 받은 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는 것과 같은 말씀이다. 이 시대 성령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한다. 그 속에 예수 이름이 속성이 작동하는 존재들이다. 곧 구원의 이름의 속성이 그들 가운데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 구원의 이름에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구원의 모든 일을 통해 그들도 자신의 시대에 구원의 일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는 삶이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2:12)”고 말씀한다. 이는 성령세례를 받은 각 사람은 자신에게만 독특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3,540년에 걸쳐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완성하셨다. 이제 성령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렇게 완성된 기록된 말씀을 통해 각자의 구원계획을 완성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예수 이름으로 칭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구원의 이름이 왕성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삶은 곧 천국을 창조하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의 처소를 예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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