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통치(창33:12-20)

관리자님 | 2022.10.15 19:07 | 조회 505

90.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통치(33:12-20)

 

12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에서는 20년 만에 만난 야곱에게 자기와 같이 세일로 가자고 하였다. 이에 야곱은 자식들과 양떼와 소 새끼 때문에 갈 수는 없고 천천히 세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에서는 자기 종들을 남겨 둘 것이라 하였고, 야곱은 그것도 사양하였다. 이는 야곱은 에서의 영향력이 미치는 상황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영적 관점에서 볼 때, 에서는 세상의 통치를 받는 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야곱은 세상의 통치를 받는 에서에게 예속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자가 아니라 세상 방식대로 사는 자였다. 따라서 그의 삶의 방식과 야곱의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세상의 통치를 받는 에서가 야곱에게 왔을 때 순간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래서 야곱에게 나올 때 400명의 장정을 데리고 왔으나 야곱을 해하지 못하였다. 그 순간은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야곱과 헤어지면 다시 세상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에서는 본래 세상의 통치를 받는 자였기 때문에 야곱의 통치가 펼쳐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통치를 받는다. 그는 본래 세상의 통치를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통치는 그와 무관하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이스라엘을 길들이기 위해 느부갓네살이라는 사람을 사용하지만, 느부갓네살은 막대기처럼 사용된 존재이지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한 자는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도 이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이 역사에 동참할 수 있지만, 그들의 동참은 막대기와 같은 동참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을 통해 일어난다. 야곱에게 하나님이 통치가 나타난 것은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를 통치하였고, 그의 가족과 그와 연결된 에서도 그 통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도 이같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인해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영의 사람, 즉 사사가 등장할 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로 바뀌어 그 곤경에서부터 탈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면, 그 자신이 통치를 받고, 그를 중심으로 한 그의 환경이 통치를 받게 된다. 따라서 그의 환경 속에 들어온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2장에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지역 교회를 인정하시고, 그 교회의 목회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다. 지역 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지역 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만 그것을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러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 교회의 통치가 흘러가는 방식이 있다. 첫째는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받고,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목회자는 그 교회가 처한 현 상황 속에서 말씀을 찾고 구하여 성령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은 그 교회 목회자를 통치하고, 교회의 성도들이 통치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두 번째로 성도들이 목회자를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을 통한 통치가 가 자신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도들에게는 목회자가 전달하는 말씀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 그 말씀을 통한 통치가 자신에게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말씀을 깨닫고, 거기에 더하여 그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말씀이 깨달아 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그 자신에게 주시는 새로운 말씀이 되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인한 통치가 또 그에게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그의 환경이 그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도 있다. 교회의 일반 성도가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그 말씀이 그를 통치하고, 그의 환경을 통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그의 일상의 삶에서 나타날 수 있고, 그는 평신도 목회자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8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은 더디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세셈 성읍 앞의 밭을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돈을 주고 사서, 그곳에 장막을 쳤다. 그곳에서 야곱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다. 이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의미로 야곱이 가는 곳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이 가서 그곳에서 제단을 쌓으면 그곳은 야곱이 정착하는 곳이기 때문에 야곱이 사는 그 장소가 곧 하나님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곧 그가 가서 정착하는 곳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곱은 2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성경은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왔지만, 이삭과 리브가의 삶에 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고, 야곱의 삶에 대하여만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기업이 이미 야곱에게 돌아갔으므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곱의 삶이 곧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야곱이라는 이스라엘만 통해서 하나님이 구속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그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어 가나안 땅에 돌아왔다. 이는 이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어 가나안 땅에 돌아온 것은 거대한 영적 의미가 그곳에 숨어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서 기업을 물려받는 축복을 받고, 급히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하였다. 그는 도망하던 중 벧엘에서 하늘의 사자들이 그 자신의 머리 위에서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야곱을 중심으로 천사가 하늘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기업을 야곱을 통해서만이 운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명의 아내에게서 11명의 아들과 1명을 딸을 낳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그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는 야곱의 온 가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이라는 한 사람이 밧단아람으로 갔지만, 돌아왔을 때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이름은 야곱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이름이 아니라 야곱에게서 나온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이름이다. 이제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 이스라엘 나라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자들이 된 것이다.

 

이제 야곱과 그 아들들이 가는 곳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게 된다. 제일 먼저 세겜 땅에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졌다. 그 나라는 세상 나라가 침범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스라엘의 이름대로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서 이긴 자들의 나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이 축복을 구하며 그것을 가지고 살면, 그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물리적인 세상에 하나님이 통치가 일어나는 특이한 한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이제 세상은 그 나라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야곱이 하나님의 기업을 받고 밧단아람에 가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거대한 영적 대하드라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는 연약한 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업을 받고, 혈혈단신 혼자 밧단아람으로 가서 그곳에서 장가가서 여러 자녀를 얻어 한 나라의 기초를 마련하고, 얍복 강가에서 세상을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하여 하나님과 씨름하여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내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영적 자격을 얻어서 가나안 땅에 돌아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는 영적 영적 대하드라마를 야곱이 펼친 것이다.

 

이런 야곱의 영적 대하드라마는 이 시대 성령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펼치는 역사와도 같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아니고, 밧단아람과 같은 곳에서 기초를 마련하고, 하나님과 씨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내는 자가 된 후 비로서 세상에 하나님이 나라를 건설하는 건설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야곱의 이야기는 성령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참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영적 교과서와도 같은 가르침이다. 여기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장면이 될 수 있다. 그곳에서 목숨 걸고 씨름하여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낸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것에 목숨 걸고 씨름하여 그것을 받아야만 세상에서 참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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