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롯이 심판을 피하여 도망한 곳(창19:23-38)

관리자님 | 2021.11.27 23:31 | 조회 888

46. 롯이 심판을 피하여 도망한 곳(19:23-38)

 

23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30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는 유황과 불에 멸망되었습니다. 성과 들들이 모두 멸망되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심판을 피한 가족은 오직 롯의 가족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구원의 법을 잊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는 심판을 당하여 피하는 자들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바로 도망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만 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마치 롯의 가족이 심판을 피하여 도망가듯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도입니다. 한 번에 돌아서라는 도입니다. 그리고 산을 향하여 전진하라는 도입니다. 이 소금기둥은 뒤를 돌아보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적 관점에서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처럼 심판이 펼쳐지고 있는 때입니다. 세상 도성의 사람들이 심판을 피하여야 할 때입니다. 심판을 피하는 자세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즉각적으로 산으로 도망하는 자세를 취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곧바로 산으로 도망한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룬 자가 되었고, 지금도 그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 사람의 생애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통한 역사는 계속하여 후세대에 이어지면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 그의 삶에서 이룬 하나님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죽으면서 끝나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 이삭을 통해 전달되어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는 역사입니다. 이삭의 역사도, 야곱의 역사도, 열두 제자의 역사도, 사도 바울의 역사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그 삶은 그가 죽어도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계속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의 세상에서의 시간을 보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가 이끌어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육체에 들어오신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일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즉 예수 이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육체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게 계실 때는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공간의 한계 속에서 예수 이름의 일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 이후부터는 제자들의 육체에 들어오셔서 그 이름의 일을 성취하십니다. 이곳저곳에 아브라함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그 속에 임하게 하시어 온 세상에서 예수 이름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일이 기초가 되어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이 끝날 때 1차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상급을 계산하게 되는데 그 상급은 우리의 생애 기간만이 아닌,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우리의 생애에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생명의 역사와 우리가 죽은 후 우리가 기초가 되어 행하신 그 생명의 역사를 모두 계산한 상급이 됩니다. 그래서 상급은 보상의 개념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롯의 아내처럼 세상을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전진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도는 전진의 도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도가 아닙니다. 뒤를 돌아보고 계속하여 회개만 하는 그런 도가 아닙니다. 한번 회개하였으면, 즉 세상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섰으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회개하지 말고, 앞을 향해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미래가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있는 미래는 모두 믿음으로 취하는 자들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이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냈습니다. 롯의 가족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피하여 소알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소알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피하라고 하신 곳은 도시도 들도 아닌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피하여야 할 곳은 산이었습니다. 그 산은 어떤 산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그곳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롯에게 피하라고 한 산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롯은 자기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으로 피할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이 소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피할 장소는 분명히 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산을 알지도 못했고, 그 산까지 가다가 재앙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소알로 피신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생각대로 할 것을 허락하지만, 그곳은 안전한 피신처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해낸 피신처는 온전한 피신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곳만이 온전한 피신처라는 것입니다.

 

30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노아의 홍수 심판 후, 홍수 이후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처음으로 임박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시고, 그가 심히 번성하여 그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을 나오게 할 것이며,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면서 세상에서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인제 세상에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그 나라만이 유일한 인간의 피난처가 되는 나라가 됩니다. 롯은 그의 생각으로 선택한 작은 도시 소알로 가서 거주하였지만, 그곳 역시 롯이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산에 올라가 거주하였습니다.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여 산에 도착하였지만, 그 산은 그들이 올바른 피난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올바른 피난처는 오직 아브라함의 나라만이 올바른 피난처였습니다. 그 나라만이 심판을 피하여서 살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이 있는 그 산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선택은 자기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을 강요하시지 않았습니다. 롯이 소돔에서 나와 산으로 도망할 때 그 산까지 갈 수 없어서 소알로 가게 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을 아셨지만, 하나님은 롯의 선택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강제적으로 롯을 이끌지 않았습니다. 강제로 사람을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에게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하면, 그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기도하면,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이 피하여 간 산에는 그의 딸들의 배필이 될 사람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 지역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피하라고 하신 그 산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피하라고 하신 산은 아브라함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 나라로 가지 않고, 홀로 산에서 그의 두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산으로 피하라고 하신 그 산은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산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 산으로 가지 않고, 다른 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 세상의 산에서 살아간 결과물은 모압과 암몬 자손입니다. 롯의 삶의 결과는 모압과 암몬 자손의 우상숭배입니다. 모압의 그모스 신과 암몬의 몰렉 또는 밀곰 신을 숭배하는 나라가 됩니다. 이 그모스와 몰렉은 같은 신으로 두 나라에서 약간씩 다르게 변형된 우상숭배입니다. 이 우상숭배의 특징은 아이를 번제로 드리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자기 신께 제사할 때, 아이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왕은 자기 아들을 제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 우상숭배는 남 유다 말기 므낫세 왕 때 행해짐으로써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심판되는 계기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롯이 심판을 피하여 도망간 곳은 올바른 피난처가 아니었습니다. 잠깐 육체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삶의 결과물은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타락하게 하는 브올의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였지만, 그가 아브라함의 품을 떠나게 되었을 때 세상의 길로 갔으며, 세상이 받을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피할 곳을 예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시대에는 노아의 방주를 예비했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는 아브라함의 나라를 예비하였고, 예루살렘 멸망 때는 아벨론 제국을 예비하였고, 이 시대, 종말의 때는 교회를 예비하였습니다. 심판의 때에는 그 피난처로 피하라고 합니다. 피난처로 피하였으면, 그 피난처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곧 하늘의 것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난처는 하늘의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늘 양식을 예비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는 제사를 하라고 했고, 소돔과 고모라 때는 아브라함의 나라에서 하늘 양식을 예비했고, 예루살렘 멸망 시에는 원수의 나라 한 복판인 바벨론에서 하늘 양식을 예비하였고, 이 시대, 종말의 때는 교회에 하늘의 양식을 예비하였습니다. 그 양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하늘의 것을 먹지 못하면, 땅의 것을 먹을 것입니다. 땅의 것을 먹으면, 결국, 사탄이 받은 저주와 같은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사탄은 종신토록 땅으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늘에 결코 들어갈 수 없고, 땅의 것으로만 먹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하늘의 것을 먹지 못하고 사탄과 같이 흙만 먹으면 그의 속성이 흙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것은 바로 하늘의 것을 먹고, 하늘의 것을 마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것을 먹고, 하늘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땅에서 배로 기어 다니는 존재가 아니며, 땅의 것을 먹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정체성을 똑바로 알고 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심판을 피하여 나와 산으로 피한 자들입니다. 그 산에서 분명히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의 것을 먹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먹을 때 그것이 하늘의 생명을 주고, 또 힘을 주어 그 힘으로 사는 자들이 됩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1,010개 (7/51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MP3
2022.02.05
박기묵
MP3
2022.01.28
박기묵
MP3
2022.01.26
박기묵
MP3
2022.01.22
박기묵
MP3
2022.01.19
박기묵
MP3
2022.01.15
박기묵
MP3
2022.01.12
박기묵
MP3
2022.01.08
박기묵
MP3
2022.01.05
박기묵
MP3
2022.01.01
박기묵
MP3
2021.12.29
박기묵
MP3
2021.12.25
박기묵
MP3
2021.12.22
박기묵
MP3
2021.12.18
박기묵
MP3
2021.12.15
박기묵
MP3
2021.12.11
박기묵
MP3
2021.12.08
박기묵
MP3
2021.12.04
박기묵
MP3
2021.12.01
박기묵
MP3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