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사라의 정체와 믿음의 실상(창20:1-7)

관리자님 | 2021.12.04 22:35 | 조회 892

47. 사라의 정체와 믿음의 실상(20:1-7)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서 거류하였습니다. 아마도 헤브론에 기근 등과 같은 살기 힘든 일이 일어났으므로 그랄로 옮겨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그가 애굽에 내려갔을 때와 같이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와 같이 한 것은 그랄 사람들이 그의 아내로 인해 그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로 내려갔을 때는 그의 아내 사라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헤브론에서의 육적인 삶이 힘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랄에서도 그랄 왕이 그의 아내로 삼으려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힘이 없어서 아내를 버리는 아브라함의 비겁함을 말하면 안 됩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에게 닥친 세상의 환경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때 300명의 가솔을 거느릴 정도로 번창했었던 아브라함의 삶의 환경이 헤브론의 환경 변화로 그랄로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살기 위해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하는 애굽과 그랄 왕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일반적인 어떤 육적인 한 사람의 아내가 아닙니다. 사라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삭이라는 하나님에게서 탄생하는 약속의 자녀를 낳을 자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첫 번째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왕들은 사라를 자기의 아내로 만들려고 하지만, 결코 세상 왕의 아내가 근본적으로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를 낳는 자들을 대표하는 열국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를 낳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구약시대는 사라, 리브가, 야곱의 네 아내, 즉 레아, 라헬, 실바, 빌하와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낳는 자들이며,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바로 사라와 같이 약속의 자녀를 낳는 존재들입니다. 세상 왕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를 계속하여 자기의 신부로 삼으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삼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인 아들들을 출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바로 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자들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사래에서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가진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라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을 낳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세상 왕이 취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그랬고, 그랄의 아비멜렉이 그를 취하려고 하였지만, 취하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였지만, 아브라함의 육적인 아들을 낳은 아내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를 낳는 아내였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사라와 같이 약속의 자녀들을 낳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41절에서는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이 말씀은 새로운 방식의 탄생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그 새로운 방식의 탄생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하늘의 아들들을 탄생시키는 시대입니다. 하늘의 아들들은 어떻게 탄생 될까요? 그것은 말씀으로 탄생이 됩니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탄생시키는 씨이기 때문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말씀이 씨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탄생하는 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를 탄생시키는 자들을 취하려고 하는 세상 왕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 왕은 결코, 사라와 같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아내로 삼으로고 하지만 결코 삼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세상의 아들들을 낳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원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아비멜렉은 그 여인을 데려온 것은 아브라함의 누이인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어떤 불의한 방법으로 그 여인을 데려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그에게 꿈에 나타나 그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도 세상 사람들이 순리대로 살면, 세상에서의 그에게 형벌이 내려지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라에게 범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의 집안에 내린 저주를 풀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이 기도하면, 너에게 내려진 저주가 풀려서 살 것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그와 그에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과 교통합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통해서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합니다. 그 당시 그랄에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는 아브라함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기도가 없다면, 아비멜렉의 저주를 풀어줄 사람은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기도와 믿음을 통해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믿음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옵니다.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약속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 말씀이 그에게 믿음을 가져다줍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나타난 믿음은 그가 소망하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긴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으로 인한 소망은 곧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실상은 그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곧 하늘입니다. 실상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 결과물이 영원히 보존되는 하늘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나타난 현실은 허상입니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 믿음의 소망은 허상이 아닌 실상, 곧 하늘이 됩니다. 그 하늘은 영원히 보존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이며, 하늘을 창조하는 자들입니다.

 

하늘의 사람들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늘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을 소유합니다. 미래는 하늘의 사람들의 것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행동하면, 우리 앞에서는 미래에 하늘이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하늘을 창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미래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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