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창23:1-9)

관리자님 | 2022.01.22 18:01 | 조회 593

54.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23:1-9)

 

1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사라는 이삭을 낳은 지 약 36여 년이 지나 헤브론에서 죽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그랄 지역의 브엘세바에서 살다가 어느 시점에 헤브론에 올라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들어가서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사라의 죽음은 영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죽음입니다. 사라는 이름이 사래에서 사라로 바뀐 후 그의 바뀐 이름의 속성대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사라의 삶을 보면, 이름이 바뀐 후 숱한 환란과 영광의 삶을 아브라함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의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애굽에 내려갔을 때는 남편 아브라함을 위하여 자신을 바로에게 바칩니다. 그랄에 내려갔을 때도 남편을 위하여 그랄 왕에게 자신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사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삶을 주관하였습니다. 결코, 바로와 아비멜렉의 아내가 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라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영광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에게 불어닥친 환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라의 이름대로 열국의 어미의 삶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뀐 후부터 그의 모든 삶은 사실상 열국의 어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사라의 삶을 보면, 사라는 그의 자녀로 단지 이삭이라는 아들 하나만 낳았습니다. 사라는 그가 가진 영의 이름대로 이삭이라는 아들 하나를 낳기 위해 바로와 아비멜렉으로부터 보호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 하나만 낳는 삶을 살았던 사라가 어떻게 열국의 어미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가 말씀으로 말씀의 씨인 이삭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씨는 번성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가진 그 말씀의 씨는 야곱을 통해 실제로 번성하게 됩니다. 사라는 비록 말씀의 씨인 이삭 하나만 낳고, 그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의 삶은 그가 가진 이름, 즉 영의 이름 때문에 계속 그 이름대로 열국을 낳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영의 이름을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영의 이름의 삶을 실상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죽어도 그 이름의 삶을 살아가는 그 자들의 삶이 바로 실상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에서의 제사는 바로 이런 실상의 삶을 연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비한 제사였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실상의 삶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죽음으로 인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삶도 그 영의 이름대로 열국의 아비와 어미의 삶을 살았고,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이름을 가진 자들의 삶은 이렇게 그가 죽어도 그 이름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산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지만 산 자입니다. 그들은 모두 영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하나님이 주신 영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육신은 죽었지만, 사실상 산 자로 현재로 그의 이름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사실상, 예수의 이름을 그들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이름을 가진 자들로 구원을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의 이름을 가진 자들로 산 자들입니다. 그들의 육체가 죽어도 산 자입니다. 그들의 이름의 역사는 그가 죽어도 그대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그가 살아있을 때만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이 죽어도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는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제자인 열두 제자와 바울은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이름인 예수 이름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구원을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삶을 완성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파함으로써 구원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도 영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들의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그 이름의 역사는 진행됩니다. 그렇게 진행된 그 이름의 역사의 완성은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진행되고, 하나님의 심판 때에 흰 돌을 받게 되는데, 그때 그 흰 돌에 그들이 영의 이름으로 살았던 삶의 상급을 그 이름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은 비밀의 이름으로 오직 그것을 받은 자들만 아는 이름입니다. 성경은 그 이름을 푯대로 삼아 달려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삶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사 삼는 삶은 곧 말씀의 씨를 낳는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치 사라와 같이 말씀의 씨를 가진 자를 낳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4장에서는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54:1)”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사야서의 말씀은 누구를 두고 한 말씀입니까? 바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사라와 같이 말씀의 씨를 낳는 자들입니다. 그 사라의 이름의 속성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라의 삶은 바로 이 시대 우리를 통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이름을 가진 자들의 삶입니다.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아브라함 헤브론으로 올랐을 때는 헷 족속이 그곳에 거류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헷 족속과는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이는 당시 헤브론에 살았던 헷 족속은 하나님을 경외했었던 것 같습니다. 헷 족속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으로 가나안 족속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나안 족속 중에 하나님을 따르는 족속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그 당시는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심판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헤브론에 살았던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랄에서 올라온 아브라함의 삶은, 계속 그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헷 족속이 보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브라함을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 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라의 매장지를 자기의 묘실 들 중 좋은 것을 선택하여 장사하라고 합니다.

 

9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아브라함은 소알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충분한 대가를 받고 자신에게 팔도록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막벨라 굴을 대가를 주고 사서 사라의 매장지로 삼았습니다. 이 사라의 매장지 막벨라 굴은 영적 의미를 가진 무덤이 됩니다. 사라가 제일 먼저 이 막벨라 굴에 매장되지만, 이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여기에 묻히게 됩니다. 그래서 막벨라 굴은 영적 관점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무덤이 됩니다. 이는 막벨라 굴은 다른 사람들의 매장지와는 다른 산 자들의 무덤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막벨라 굴은 영의 이름을 가진 자들의 무덤으로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은 사실상 살아서 그들이 가졌던 영의 이름의 삶을 현재까지도 사는 자들의 무덤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자들의 무덤입니다.

 

이 막벨라 굴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인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과도 같은 의미의 무덤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것을 기다리는 자의 무덤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영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모든 자의 주검은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땅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을 기다리는 자들의 무덤을 막벨라 굴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그 막벨라 굴이 헤브론에 있던지 세상 모든 지역에 퍼져 있는지 상관없이 영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모든 자의 무덤은 막벨라 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벨라 굴에 묻힌 자들의 삶은 세상 끝날까지 그곳에 묻혀서도 그들이 가졌던 영의 이름대로 그 이름의 역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벨라 굴에 묻힌 자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모두 이 막벨라 굴에 장사 될 것입니다. 산 자들의 무덤인 막벨라 굴에 묻혀서 부활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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