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아브람이 받은 약속과 소망의 삶(창13:12-18)

관리자님 | 2021.08.14 15:52 | 조회 851

31. 아브람이 받은 약속과 소망의 삶(13:12-18)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람과 롯은 서로 갈라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요단 동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면서 장막을 옮겨가면서 살다가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습니다. 소돔 사람이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그 도시는 완전한 흑암으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구제 불능의 도시였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도시 중 가장 먼저 완전한 흑암으로 채워진 도시가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심판받게 됩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였지만, 실상은 흑암이 드리워진 곳이었습니다. 롯은 흑암으로 깔린 그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브람처럼 부름받은 약속을 가진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아브람과는 달리 소돔이라는 도시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처럼 그 도시의 환경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브람과 롯의 차이입니다.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이 보이는 땅은 그와 그이 자손들에게 주어 영원까지 이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브람이 서 있는 그곳이 아브람을 통해 세우실 영원한 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가나안 땅에 세우실 나라는 영원까지 계속될 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영원한 나라의 시작은 처음에는 가나안 땅에 육적 이스라엘 나라의 형태로 세워집니다. 그 육적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부터는 영적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집니다. 이 영적 이스라엘 나라는 갈릴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에 퍼지는 나라가 됩니다. 영적 이스라엘 나라는 그 뿌리는 아브람에게서 시작된 가나안 땅이지만, 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나라가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 참 이스라엘 나라는 영원까지 이르는 나라가 됩니다. 육적 이스라엘 나라는 세상에서 없어질 수 있는 나라이지만, 영적 이스라엘 나라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런 나라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이 아브람으로부터 계획하신 그 나라는 실상은 영원한 나라, 천국이었습니다.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아브람의 자손은 땅의 티끌 같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육적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통해 계획하신 그 나라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나라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처음 시작될 때는 아주 작은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알려 줍니다. 이 나라는 신비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사람의 뜻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런 영원한 나라를 세운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이 실행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그 약속을 믿고 따라갔습니다. 그의 생전에는 육적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 약속을 가지고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고 환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땅에서 살 동안에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11:10)”라고 히브리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성이 바로 앞에서 말한 아브람에게서 시작된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성은 하늘의 사람들이 사는 성을 말합니다. 세상에 임하는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는 영원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입니다. 이 성은 터가 있는 성이라고 합니다. 그 터와 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신다고 하십니다. 이 성은 신비한 성입니다. 신비한 터가 있고, 그 위에 지어진 성인데 이 터와 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신비한 성의 터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신비한 성의 터입니다. 이 터의 근본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아브람이 되고, 장소의 관점에서는 가나안이 됩니다. 가나안 땅의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의 아브람부터 시작되는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안 땅에 왔을 때 완성됩니다. 사실상,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안 땅에서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직접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행하신 그 모든 말씀과 역사가 바로 그 터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의 역사는 구약성경과 신약의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것이 그 터가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오셔서 행하신 모든 말씀과 기사와 이적들이 모두 그 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제자와 사도 바울, 누가와 마가와 같은 초창기의 제자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가나안 땅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도를 전파함으로써 이 그리스도의 도의 터를 완성하고, 그곳에 신비한 성을 세우기 위한 기초를 놓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12제자와 사도 바울, 초기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복음전파의 삶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함께 신약성경으로 기록되어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 초기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함으로써 신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터를 잘 닦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신비한 성의 터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곧 이 터가 되는 것입니다. 인제 이 터 위에 신비한 성이 지어져 가게 됩니다. 그 신비한 성을 짓는 건축재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집, 나무, 풀이 아닌, 금과 은과 보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3:12). 건축재료는 그 터와 속성이 같은 재료로 지을 때 비로소 견고하게 남아 있는 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속성이 같은 건축재료는 바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금과 은과 보석입니다. 그 말씀을 깨닫고 행하는 것이 신비한 터 위에 신비한 성을 세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터 위에 나무나 짚이나 풀로 그 터 위에 집을 지으면, 그것은 이후 하나님의 공력이 불로 나타날 때 모두 타서 없어지고,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중에는 이렇게 불 가운데 구원받는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 구원받는 자들을 보면, 자기들을 열심히 하나님의 집을 건설한다고 생각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재료를 사용함으로 인해 그들의 그 건축의 일은 이후 하나도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그이 생전에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그 약속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실에서 주어진 삶, 즉 이삭을 낳고 야곱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람의 삶은 약속을 바라보는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이는 아브람의 뿌리에서 나온 모든 자의 삶은 바로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소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분명한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소망의 삶을 사는 자들은 더는 세상에 사는 자들이 아니며, 하늘에서 사는 자들이 됩니다. 이렇게 하늘에 사는 자들이 되면, 그의 삶 속에서는 비밀스럽게 하늘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작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하늘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경험하면서 사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는 자들은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되어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일이 일어납니다(1:17). 하나님의 약속, 즉 복음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따라가면, 그 믿음으로 따라간 결과물이 그에게서 나타납니다. 그 영적 결과물을 삶 가운데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은 곧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그 사람을 새로운 믿음으로 세계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렇게 약속을 가지고 소망의 삶을 살면, 성숙한 믿음의 세계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영과 혼과 육이 모두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며, 성령의 성품이 그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생자 배기와 같이 거친 육적 성품이 있지만, 점점 신사적 성품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후 그들의 삶이 설계도가 되어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축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내가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그 거처가 예비 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그리로 영접하여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제자들도 함께 있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4:2, 3).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신 후 어디에 있습니까? 제자들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가셔서 거처를 예비하는 곳은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거처를 예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동역하면서 진행하는 복음전파의 역사가 바로 제자들의 거처를 예비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행하여 창조한 영적 결과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비하시는 그 거처의 설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설계도대로 하나님은 그 위대한 건축물이 나타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 건축물을 우리는 예루살렘 성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삶은 곧 예루살렘 성의 설계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의 성전을 보여주시면서, 세상에 세워질 물리적 성막의 설계도를 주십니다. 그 물리적 성전의 설계도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전달되어, 지혜의 영이 그들에게 역사하여 그대로 성막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하늘의 성전이 세상의 물리적 성전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 광야의 성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집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지어진 하나님의 물리적인 집인 성전은 하늘의 설계도를 모세가 보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인제 천국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살아갈 그 하늘의 도성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설계하고, 그 설계도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시어 때가 되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서 살게 될 거처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들의 삶이 설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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