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브라함의 자손과 회개(눅3:7-14)

관리자님 | 2024.03.02 19:16 | 조회 86

14. 아브라함의 자손과 회개(3:7-14)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유대인 무리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왔다. 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한다.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 즉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칭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선지자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영적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선지자 세례요한은 유대인의 혈통을 자랑으로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독사 즉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의식을 버리라고 외쳤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완전한 영적 사람이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혈통적 유대인의 올바른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 혈통적 유대인은 영적 관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독사 즉 마귀의 자식이다.

 

그러면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다. 하늘나라의 자손이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6)” 아브라함의 자손은 오직 그리스도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한 후 받은 약속들이다. 창세기 22장에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크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22:17,18)”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을 말씀하신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유대인 무리가 그들에게 오자 독사의 자식이라고 칭한 것은 바로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독사 즉 마귀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그 독사 마귀의 자식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다. 혈통적 유대인의 진정한 정체성은 마귀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 혈통적 유대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2장에서도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2:28,29)”라고 말씀하였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 유대인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 즉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자들만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은 사람이 어디에서 탄생하였는지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이는 영적 이야기이다. 사람의 본체 즉 영에 관한 말씀이다. 혈통적 유대인들의 본체인 그들의 영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에서 나왔지만 그들의 영은 여전히 아담이 범죄했을 때 타락한 죽이는 영이었다. 많은 사람의 착각은 자기 즉 사람을 영이 아니라 혼과 육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혈통적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타락한 죽이는 영이라는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의식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어서 이방인들을 무시하였다.

 

아브라함은 무지개 언약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다. 그의 본체는 사실상 범죄한 죽이는 영이다. 하나님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속한 믿음을 주셔서 인간의 근본을 바꾸기 위한 구속의 역사를 출발시켰다. 그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도록 하였다. 그에게 하늘이 준 믿음이 있었으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독자 이삭을 바쳤다, 그로 인해 네 씨로 인해 아브라함의 자손 번성과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과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들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그런 관점에서 세상에서 하늘에 속한 속성인 믿음을 처음으로 출발시킨 인물이다.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아브라함 자신도 그의 영은 타락한 죽이는 영이었으므로 그의 자손인 그의 씨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삭은 그의 씨의 모형이다. 그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했으므로 멀리서 그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하여 세상에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로 칭하는 분으로 세상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시키는 시작점이다. 그리스도 이후 타락한 죽이는 영은 십자가에서 죽고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의 시대, 이면적 유대인의 시대가 시작된다. 즉 살려주는 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살려주는 영이 영을 탄생시키는 시대가 시작되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시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시대, 천한 만민이 복을 받은 시대가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사라와 같이 하늘의 사람을 탄생시키는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새 출산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지 말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당시 혈통적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하나님은 이 흔하디흔한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영적 관점에서 유대인이 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시 혈통적 유대인들이 말씀하는 것과 같은 유대인이 아니라 진정한 유대인, 즉 산 자의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시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산 자라고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구속의 역사,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그 본체는 타락한 영이지만 산 자라고 칭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는 것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심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육체를 입고 나타나면 심판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영적 관점에서 볼 때 심판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심판을 받게 된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힌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 가르침을 따라가지 아니하는 자들은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면 심판받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이후의 시대는 구원의 시대이다. 인간의 근본이 바뀌는 시대이다.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죽이는 영이 살려주는 영으로 인간의 본체가 바뀌는 시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면 그의 본체는 죽이는 영에서 살려주는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본체가 살려주는 영이 된다. 이 살려주는 영의 근본 속성은 하나님의 영과 같은 속성인 거룩함이다. 그 영이 우리 속에서 혼과 육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혼과 육체도 거룩하게 된다. 그 거룩함이 영의 세계에서는 부정함을 삼킨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여도 그의 혼과 육체인 겉사람은 거듭나기 전에 있었던 죽이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그 겉사람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속사람인 살려주는 영의 생각을 따르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5장에서 장로들에게 권면하기를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였다(벧전5:2,3). 여기서 억지로 하는 것,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는 것과 주장하는 자세는 겉사람의 생각이다.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죽이는 영의 속성이다. 그것이 나타나면 양무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게 된다는 것이다. 양무리를 치는 자는 자원함으로 하고, 기꺼이 하고, 본이 되는 그것이 살려주는 영의 속성이다. 특히 양무리를 치는 자들이 현실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주장하는 자세이다. 이 주장하는 자세는 오히려 그 양무리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주장하는 자세는 겉사람의 생각이다. 양무리를 치는 자들의 속사람인 살려주는 영은 거룩함을 속에서부터 낼 때 주장하는 자세가 나타나면 살려주는 영과 죽이는 영의 속성이 섞인 네피림이 속성이 나가게 된다. 이렇게 양무리를 치는 자들은 세상에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그 열매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는 거룩함이 모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구약시대 지성소의 거룩함은 부정한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 하나님의 궤의 거룩함은 웃사를 죽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하였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오늘과 내일 백성을 성결하게 하며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날 하나님이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서 강림할 것이니 백성들에게 경계를 알리고 침범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시내산에 연기가 가득한 가운데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시내산에 임하였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자는 그 거룩함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거룩함은 부정함을 죽이는 속성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함은 성전에서 나온다. 살려주는 영에서 나온다. 그것이 나의 혼과 육체를 넘어 흘러가기만 하면 거룩함이 세상에 흘러가고, 그러면 세상의 부정함을 삼키고 세상을 소성시킨다. 부정함이 사망을 오게 한다. 마귀는 부정함이다. 그의 속성은 부정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그 부정함을 삼키셨다.

 

그러면 심판의 시대는 어떻게 살면 될까요? 옷 두벌이 있는 자는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나눠주고, 세리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군인들에게는 강탈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죽은 자의 영의 본능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회개하라는 것이다. 육체의 본능의 길로 가지말라는 것이다. 회개하고 자기에게 와서 물세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회개하는 물세례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의 본능,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따르면 그리스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가 이미 왔으니 현재 자신이 가던 육적 본능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에게 나오는 자들은 세례요한이 그분을 소개할 것이기 때문에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은 후 세례요한이 소개하는 그분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twitter facebook google+
목록으로
댓글 0 | 엮인글 0
1,009개 (1/51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4.2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4.20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4.13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4.0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3.30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3.23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3.16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3.09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3.02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2.25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2.1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2.10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2.03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1.2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1.20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1.1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1.14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4.01.06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12.31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