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리스도의 고향 사람들(눅4:22-30)

관리자님 | 2024.04.07 09:21 | 조회 38

19. 그리스도의 고향 사람들(4:22-30)

 

22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 초반부를 읽고 그것을 해석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으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영의 가르침인데 혼의 가르침으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요셉의 아들로 생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영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영의 가르침으로 받는 자들은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 자연적으로 그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그 가르침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의 가르침을 베푸는 자에게는 세상을 움직이는 능력이 동반된다. 그래서 영의 가르침은 언제나 기사와 이적이 동반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으로 착각할 수도 있고, 혼의 가르침을 영의 가르침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영 분별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회당에서 영의 가르침을 받은 고향 사람들에게 그들의 속마음을 말씀하셨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행하였던 표적을 고향에서도 행해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으로 착각하는 자들은 표적을 구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자들 앞에서는 표적을 행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표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능력이시다. 그러므로 그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일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부정한 것이 없어지고 질서가 회복된다. 그 부정한 것이 없어지고 질서가 회복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표적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에게 나타나는 표적은 본질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본질보다는 본질의 부산물로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싶어 하고 그것을 추구한다.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자들이 아니라 표적을 우상으로 삼는 자들이다. 표적은 저절로 나타나는 말씀의 결과물인데 그것을 추구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숭배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왜곡하게 되어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 다른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다른 복음을 만들어 그것을 따르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을 착각하게 하는 다른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표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왕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같은 육체를 입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늘의 뜻을 전달하고 그 육체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혼의 가르침으로 받는 자들은 그 가르침을 통해 자기를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다른 지역으로 파견된 율법주의자들은 그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선생 노릇을 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능력을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스스로 존경받고 싶어 하였다.

 

선지자들은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어린 시절, 즉 사람의 차원에서 같이 살았으므로 선지자를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의 기본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맡은 자들을 그 혼을 옷 입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입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다. 이는 선지자를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받는 자들은 그도 선지자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몸을 입고 있는 자들을 통해 말씀을 전달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을 통해 나오는 말씀을 성령에 의하여 나온다고 인정하면 그들도 성령의 사람처럼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된다.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두 가지의 실례를 통해 알려주신다. 하나는 시돈 지역의 사렙다 과부의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리야시대 삼 년 육 개월 동안 가뭄이 왔을 때 이스라엘 중 많은 과부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과부 중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환영한 자는 시돈 땅의 사렙다의 한 과부였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았으므로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엘리야를 그를 가장 환영할 수 있는 집으로 보내셨다. 그 집은 북이스라엘이 아닌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의 집이었다. 그래서 그 많은 과부의 집이 아닌 시돈 땅의 한 과부에게 보내어 그 집에서 같이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그 많은 집 가운데 딱 한 집을 찾아내셨다. 북이스라엘 전역에 이같이 참 선지자를 영접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모두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그것 때문에 마지막으로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해 먹고 죽으려고 했지만 살아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딱 한 집을 찾아내셔서 그곳으로 엘리야를 보내셨다.

 

선지자를 맞이한 그 집은 곧 하늘과 연결되어 하늘에서 보내는 신령한 양식을 먹으면서 가뭄의 때를 넘긴다. 그들이 마지막을 음식을 하여 먹고 죽으려고 했을 때 그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선지자를 공궤하였다. 그때 그 집의 밀가루와 기름을 마르지 않았다.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으므로 선지자를 영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환영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영접했다는 것은 그 집은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집이 세상에 있지만, 그 집은 하늘나라였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밀가루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은 곧 하늘나라이다. 이런 곳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당연히 일어난다. 그 말씀은 곧 하늘이기 때문이다.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자들의 또 다른 실례는 나아만 장군이다. 나아만 장군은 아람의 장군으로 나병환자였다. 그는 그 나병을 고치기 위해 그렇게 먼 아람에서 엘리사를 찾아와서 결국 그 나병의 고침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그 열정이 그를 구원하였다. 북이스라엘에도 수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지만 가까이 있는 엘리사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방 사람 나아만만 엘리사를 선지자로 인정하여 나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 시대 영과 혼과 육체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 질병을 고치기 위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과 같이 환영하는 것이다. 이같이 말씀을 열망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말씀을 환영하는 자들이 말씀을 차지한다. 하늘나라는 그것을 환영하는 자들의 것이 된다. 마음으로 환영하는 자들이 말씀을 차지한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시대, 엘리사는 오므리와 예후왕조의 요아스 왕 시대의 선지자이다. 북이스라엘은 그 당시 완전히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었다. 여로보암이 열어놓은 금송아지 우상숭배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선지자로 대우하지 않는 풍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여로보암이 만들어 놓은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우상 제단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상의 제단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에서는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들에게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났지만, 그들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같이 취급하였다. 엘리야 당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는 왕비 이세벨의 상에서 왕궁의 밥을 먹는 왕의 선지자였다. 그들은 국가 공인 선지자들이었다. 암울한 시대였다. 그래서 갈멜산 제사 대결을 통해 엘리야가 이들 선지자 850명을 죽이도록 하셨다. 이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가볍게 생각한 백성들이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보내졌고, 나마만 장군만이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넓은 길로 가고 있었다. 율법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이라는 기록된 말씀과 성전을 주셨다. 그런데 그 결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전의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같이 멸망 앞에 서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남유다의 멸망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마카비 왕조가 100여 년 동안 통치했으나 하나님의 정통성이 없는 나라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왔을 때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메시아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이용한 세상 권력을 만들어 냈고 그것에 취해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고, 이방 민족에 환영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인 이방 민족에게 퍼지게 되었다. 그 육적 이방 민족과 함께 참 이스라엘 나라가 시작되었다. 물로 유대인들 중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극히 일부였고, 이스라엘 대다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실 때 그와의 대화에서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8:11-12)”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을 환영하는 자들의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이 태어날 때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다. 그는 태어나기 전 이미 이삭이 가진 하늘의 씨를 받도록 정하여져 있었다. 이삭이 가진 하늘의 씨는 이미 야곱에게 가도록 정하여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이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다. 이는 그가 형이 가진 하늘의 씨를 탈취하라는 것이었다. 그 하늘의 씨에 목숨을 걸라는 것이었다. 그 하늘의 씨는 이삭의 육적 기업이 아니라 영적 기업, 즉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삭의 육적 기업은 그 하늘의 씨로 인해 세상에 나타난 이삭의 땅과 재산이고, 영적 기업인 하늘의 씨는 그 이삭의 땅과 재산을 만들어 내는 근본 근원의 힘이다.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였고 야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야곱은 이삭의 영적 기업을 탈취하였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탈취하는 것이다.

 

이 시대 야곱과 하늘의 씨를 중시하는 자들은 하늘의 말씀을 중시하는 자들이다. 그가 말씀을 깨달으면 그 말씀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는 영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세계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혼의 생각으로 세상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거대한 기업, 거대한 국가, 거대한 빌딩 등과 같은 세상 세계이다. 이를 바벨론 제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즉 영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세상에서 작은 소자에게 한 잔의 물을 대접하는 것과 같이 작을 수 있지만, 참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부른다. 그 세계는 육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이다. 하늘의 씨를 가진 자들만 보는 세계이다. 그 하늘의 씨를 가진 자들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땅의 기름짐과 하늘의 이슬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수고하지 않고 씨를 뿌리면 땅이 스스로 소출을 내고 하늘의 이슬이 필요할 때마다 내려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늘의 씨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땅을 기름지게 하려고 거름을 주어야 하는 수고를 하여야 하고, 하늘의 이슬을 위하여 마음을 졸여야 한다.

 

이 하늘의 씨를 가지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하도록 하려고 하나님은 야곱을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다. 따라서 하늘의 씨는 그것을 가지고 지킬 수 있는 자들이 차지하는 데 이들은 필수코스로 세상의 고난을 통과한 자들이다. 이 하늘의 씨도 육체를 가진 자들이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을 통과한 자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고난은 그의 영과 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게 한다. 구약시대는 혼과 육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영하도록 한다. 다윗이 바로 그런 자였다. 그의 고난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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