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율법주의와 선을 쌓는 방법(눅6:39-49)
“39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은 비유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맹인은 영적인 관점의 맹인을 의미합니다.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자들은 그 세계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영적인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감각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에 취해 있어서 자신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보고 비판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율법주의에 취했었고, 그로 인해 제도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도가 지향하는 풍조를 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도화되고 그 풍조를 타면 집단사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집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선이고 다른 존재들은 악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나게 됩니다. 위의 말씀은 그와 같은 자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치유를 맡기지 않으실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이 시대에도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중 이와 같은 율법주의에 의한 제도화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와 같이 제도주의와 율법주의에 빠지게 될까요?
2. 예수님의 또 다른 비유는 못된 나무는 못된 열매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에 관한 비유로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을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선이 쌓이면 선을 내고, 악이 쌓이면 악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선을 쌓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을 알아야 합니다. 선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즉 말씀만이 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말씀을 쌓아야만 선이 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쌓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말씀을 깨달아야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일상의 삶에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경험하면 우리들의 마음에 선이 쌓이게 되며 그 선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선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비로소 그에게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고,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곧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며,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선을 쌓는 출발점은 바로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때 천국의 역사가 창조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하기를 꺼려합니다. 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