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7. 질그릇에 담긴 보배(고후4:1-10)

관리자님 | 2017.02.14 10:39 | 조회 373

7. 질그릇에 담긴 보배(고후4:1-10)

 

1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 바울의 일행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의 직분(사람들의 영에 빛을 비추는 직분)을 마치 모세가 율법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라고 위임받은 것처럼 위임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긍휼하심을 입은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영의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영의 직분을 위임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위임받은 자처럼 하면 됩니다. 그러니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위임받은 그 일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임받은 자는 단순히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전에 모세가 므라바물의 사건에서 백성들에게 화를 내면서 반석을 두 번 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모세와 아론)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20:12)”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위임받은 자의 행위를 벗어난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통해 반석에서 물은 주셨지만 모세의 행위에 대하여서는 그 대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영의 직분을 받은 자들도 위임받은 자들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낙심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위임자들도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2. 바울과 그 일행들이 복음을 전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이 전한 복음은 그들 때문에 가리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며, 바울과 그 일행이 전파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주님 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그들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종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빛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배라고 합니다. 그 보배를 질그릇과 같은 몸에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바울과 그 일행은 질그릇이라고 하고, 그 영광을 아는 빛은 보배라고 합니다. 따라서 영광을 아는 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비추어진 빛인 그 보배에 의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보배를 질그릇인 육체 속에 담고 있는데 이는 능력은 이 보배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질그릇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능력의 객관성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환경에 따라 그 능력이 좌우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외부의 우겨쌈, 답답한 일, 박해, 꺼꾸러뜨림에 등과 같은 고난에 좌우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고난은 예수님의 생명력이 그들에게 더 넘치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력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왜 고난 받을 때 예수님의 생명력이 넘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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