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 그리스도인들의 육체와 영적 실체(살전4:1-8)

관리자님 | 2018.06.25 22:55 | 조회 335

5. 그리스도인들의 육체와 영적 실체(살전4:1-8)

 

1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1.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거룩함을 유지하라고 합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것은 곧 음란을 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몸을 거룩함과 존귀함에 위치시키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할 줄 알라고 합니다.) 결국, 자신의 육체를 음란, 색욕에 빠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의 일에 빠져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음행의 일로 자신의 육체를 절제하지 못하고 분수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수를 넘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는 일,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일, 여러 가지 경계선들을 넘는 행위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그 본질인 거룩함의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먼저 당신께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 것은 성령님을 주셔서 그 육체까지도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분수를 넘어 그 육체를 부정하게 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로고스의 말씀을 성령으로 운영하기 위한 한 장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 육체에서 로고스의 말씀이 운영된다면 그 육체는 곧 로고스의 말씀이 되어버리는 그 육체입니다. 즉 육의 세계에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의 육체와 닮은 육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래 로고스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체의 몸을 입고 눈에 보이는 육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성령으로 로고스의 말씀을 운영하는 시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 것일까요?

 

2. 그리스도인들은 로고스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지 예수의 상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는 로그스의 말씀이 행하셨던 그 모든 역사들, 그 말씀들, 앞으로 행하실 그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오셔서 하시는 일은 바로 그것들을 알고 믿도록 하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행하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 때의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더 이상 허상이 아닌 영적 실체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 실체의 한 사람을 탄생시키시기 위해 그 수많은 구약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실체의 한 사람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하늘의 왕권을 가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영적 모습과 위상을 육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다윗 왕입니다. 그리스인들은 바로 영적 세계에서 다윗과도 같은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런 외침이 육적 생각에 의해 가려져 있었습니다. 마치 양 99마리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육적인 생각과 그 풍조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즉 큰 것이 작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더 좋다는 생각에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99마리는 실체가 아니라 무리, 즉 허상입니다. 오직 실체는 한 마리의 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한 마리를 끝까지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99마리의 무리에 집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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