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4-1. 제도화된 삶과 지성소의 삶(살후3:1-5)

관리자님 | 2018.09.20 21:09 | 조회 307

4. 제도화된 삶과 지성소의 삶(살후3:1-5)

 

1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바울은 주의 말씀을 전할 때 계속하여 부당하고 악한 자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부당하고 악한 자들은 사단의 종의 역할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사단의 종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본래 사단의 일입니다. 그 당시 바울의 복음전파를 방해한 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서도 세안식일 동안 강론할 때 유대인들의 방해로 쫓겨서 베뢰아와 아덴으로 갔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방해한 이유는 시기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유대인들이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참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가장 많이 방해한 것입니다. 사단의 하는 일은 바로 그 육적 본능을 자극함으로써 복음전파를 방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육적 본능을 따르면 복음전파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여 육의 본능이 없어진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영으로부터 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의 생각을 따를 수도 있고, 영의 생각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제도나 풍조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도 유대인의 그들이 선이라 생각한 제도를 따랐기 때문에 시기가 나서 바울의 복음전파를 방해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생각의 틀이나, 제도, 풍조를 선으로 치장하여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면 오히려 가까이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허상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고침 받은 10명의 나병환자들 중 9명이 그랬습니다. 실상의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까요?

 

2.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들이 명한 것을 행할 것을 확신한다고 하면서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빠진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가 저절로 나오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의 속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그리스도인들의 성전 된 삶을 통해 설명한다면 그들에게서 지성소의 속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지성소는 완벽한 거룩함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된 성도들의 지성소로 인도되는 삶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될 수 있는 첫 출발은 영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 생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영의 생각으로 채워져서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면, 바로 그 때에 물세례가 완성되는 것이며, 그 물세례가 완성됨과 동시에 성령세례가 나타나 천국이 눈이 보이게 육체에까지 표출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으로 알게 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속성이 생기게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세례가 나타나는 삶이 곧 지성소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육체,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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