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 육신에 사는 것과 고난(빌1:22-30)

관리자님 | 2018.01.29 11:54 | 조회 323

3. 육신에 사는 것과 고난(1:22-30)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1. 바울은 자신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한 후 그러나 육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자신의 일의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죽는 것과 사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죽어서 그리스도를 대면하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지만 육신으로 사는 것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는 더 유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는 것은 그들에게 믿음의 진보와 영적 기쁨, 풍성한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같이 성령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그를 만나는 자들에게 믿음의 진보와 기쁨, 풍성한 사랑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과 같은 사람, 한 사람이 길러지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최고의 가치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성령님이 함께 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교회에 믿음의 진보와 기쁨,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자랑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들로 복음의 말씀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써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는 자들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쫓는 자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순서가 바뀌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면 그릇된 은사주의자나 표적을 추구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은사, 표적, 병고침, 귀신추방 등을 강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 자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2.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과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마음의 원어는 한 πνευμα, 프뉴마로 한 영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 영 즉 성령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즉 다스림은 성령님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에 생각을 가져다주심으로써 그들을 변화시켜 그 마음을 따라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방식입니다. 성도들이 이 성령님이 주신 뜻을 알고 그것을 따르면 복음의 신앙 즉 믿음을 위해 협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생각을 가져다주시면 육적 위협의 존재들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두려움은 영에 의해 제압됩니다. 그래서 대적자들은 멸망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고난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은혜입니다. 고난도 은혜입니다. 이 고난은 오직 육체가 있을 때에만 받습니다. 예수님도 육체가 있었을 때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우리 자신에게만 주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다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날마다 지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할까요? 왜 날마다 져야할까요? 날마다 십자가를 지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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