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5-2 하늘의 가르침과 훈련된 제자(요19:12-22)

관리자님 | 2020.12.26 13:27 | 조회 182

85. 하늘의 가르침과 훈련된 제자(19:12-22)

 

12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7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놓으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죽이라고 외칩니다. 빌라도의 권세는 세상의 권세로 사단이 준 권세입니다. 빌라도는 사단으로부터 생겨난 국가권력을 가졌지만 직접적으로 사단의 종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하는 자들이 그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유대인들이 실상은 사단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단에 잡혀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사단은 이같이 사람을 속이면서 활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주로 인간을 통해 일하는데 주로 감정을 통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 메시아를 죽이라고 외칩니다. 사단은 메시아가 세상에 나타나자, 그의 권세가 위축되었습니다. 사실상, 그는 하늘 보좌로부터 쫓겨나서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아들이 나타나자 그의 권력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계속하여 왕 노릇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사람의 생각을 이용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단이 어리석은 것은 바로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계속하여 자신이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의 계획은 오히려 자신이 멸망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메시아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단의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았는데 사단의 일을 한 것입니다. 이는 율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이 일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14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유대인들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오히려 그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인 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리스도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육체와 환경의 가르침을 받는 존재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매일 받지 못한다면, 저절로 육체와 환경의 가르침이 그의 생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와 환경의 가르침은 거의 사단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이 가르침을 받는 것을 우리는 경건의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영적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큽니다. 육적 관점에서는 그냥 비슷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영적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육체와 환경이 가르쳐주는 것을 따릅니다. 그는 비록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도 없는, 성경의 말씀이 그에게는 거의 작동되지 않는 자입니다. 이는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오합지졸과 같은 영적 군사는 그 수가 수만이 되어도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은 예날 전쟁과 같은 육적 전쟁과 달라서 군사의 수로 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에서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과 엘리야의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 전쟁에서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병거 30,000, 마병 6,000, 백성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았지만, 그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도 영적 전쟁을 위해서는 훈련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는 구약시대와는 달리 죽은 자를 살리는 전쟁이 펼쳐지는 시대입니다. 그런 죽은 자를 살리는 영적 전쟁에서는 훈련된 병사 한 사람입니다. 훈련된 병사 한 사람만 있으면, 그를 통해 하나님은 수만 명의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훈련된 그리스도의 제자 한 사람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면 훈련된 제자 한 사람은 어떻게 양성이 될까요? 어떤 제자를 훈련된 제자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선이 그 속에 쌓인 자를 말할 수 있습니다. 선이 쌓이면, 그 쌓인 선에서 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의 훈련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 속에 선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어떻게 쌓을까요? 여기서 선은 무엇일까요? 선은 영적 관점의 선을 말합니다. 영적 관점에서의 선은 곧 하나님, 즉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속에 말씀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가르침은 그 사람 속에 들어오면 없어지지 않고 쌓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서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그는 육체와 환경의 생각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훈련된 자들은 영적 전쟁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자들이 됩니다. 예전에 여호수아와 다윗은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이 시대의 영적 전쟁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게서 오는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말씀을 시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그런 차원의 시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늘이 주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현재성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다는 것은 지금 바로, 지금 예수가 구원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언제나 현재성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입니다.

 

믿음이 현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주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와 미래가 있는 존재입니다. 특히, 세상에 육체로 존재할 때에는 지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그 자신은 결코, 영적인 세계에서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주체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이 변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육체로 존재하실 때 그분에게 오는 모든 병자, 약한 자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도 고쳐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같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는 병 고침의 주체였습니다. 그 당시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자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병 고침의 중심이며, 속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병든 자들은 그때처럼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그리스도가 자기에게로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병든 자들은 과거와 미래가 있는 지나가는 자들입니다. 병을 고쳐주시는 분인 그리스도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병을 고치는 라파의 속성은 현재 병을 고치고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그 속성은 현재도 주체적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자들은 라파의 속성이 있는 그분에게로 와서 지금, 바로 지금, 그분의 라파의 속성을 가져가면 됩니다.

 

그 라파의 속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존재합니까? 생명의 떡으로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그 떡을 먹으면, 그 병 고침의 주체이신 그리스도가 내 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고치는 것입니다. 언제, 바로 지금입니다. 누구든지 그 생명의 떡을 먹으면 됩니다. 그 생명을 떡을 먹었으면, 지금 그 병 고침이 작동되어 나은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와 과거의 구원이 아니라 지금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모든 자를 모든 상황에서 지금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7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신 모든 목적이 달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참으로 주는 그리스도라는 그 말씀이 완성된 것입니다. 인제 사단이 활동하는 세계는 그 환경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했을 때 달라진 모든 환경은 인제 다시 처음으로 환원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의 환경이 펼쳐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왕 노릇 하면서 활동하던 세상은 하나님 아들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단이 더는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 나라가 점령당한 것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때문입니다. 그 유대인의 왕이 진짜 왕이었습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당했던 그분이 참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세상의 왕인 가이사를 자신의 왕이라고 외치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참 왕이 왔지만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육적 유대인에서 영적 유대인에게로 옮아가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세상에서 그 유대인의 왕을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238개 (2/12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MP3
2020.12.26
박기묵
MP3
2020.12.26
박기묵
MP3
2020.12.26
박기묵
MP3
2020.12.26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10.24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
박기묵
MP3
202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