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5.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요12:12-19)

관리자님 | 2020.04.25 17:09 | 조회 182

55.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12:12-19)

 

12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온 큰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 나사로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는 소식이 온 지역에 퍼져 있었던 터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당시 그 지역에서의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사로였습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린 이 사람은 이스라엘을 반드시 구원할 이스라엘의 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합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시옵소서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여기서 로마의 종노릇을 하면서 사는 자신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무리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요청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완전한 육적인 왕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러한 요청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나귀 새끼를 타셨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육적인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은 나귀 새끼를 타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왕이 되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시는 것은 그들에게 겸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오히려 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섬기시겠다는 것입니까? 그 백성들을 높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높이시겠습니까? 그들 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육적인 왕이 되어 달라는 백성들의 생각은 육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육적으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적인 왕이 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적인 왕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육적인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들은 그 생각을 넘어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당시 육체를 가지셨지만, 영적 생각의 길을 따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가신다는 것을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하신 그 영적인 길은 본래 기록된 말씀에 나타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록된 말씀의 길을 그대로 따르신 것입니다. 그 기록된 말씀은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시온 딸이라는 말씀은 시온 즉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 하나님 나라의 도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도성의 백성들아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이제 그 두려움이 없어지는 날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의 입성은 얼마나 위대한 말씀의 성취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 아담의 범죄로부터 나타난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도래했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한 영적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은 이미 기록된 말씀에 나타나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가 기록된 말씀, 기록된 말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차원입니다. 영적 세계는 기록된 말씀의 세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도 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기록된 말씀의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기록된 말씀에 나타난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록된 말씀의 그 길을 가시니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이 없어져 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기록된 말씀의 길을 알고, 그 길을 선택하여 간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뜻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의 뜻은 육적인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기록된 말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는 그것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육을 만족시키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성의 입성은 영적 관점에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완전한 육적인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습니다. 세상에 세우신 그 하나님 나라의 모형에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그 백성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성전에서 그 백성들과 같이 생활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에 인제 참 하나님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 백성의 도성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그 나라의 도성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은 세상에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거대한 영적 나라가 육적 나라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단에게 점령된 그 나라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육적 나라를 침범하는 방법은 말을 타고 점령하는 그런 방식의 침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도 기록된 말씀의 길을 선택하신 삶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침공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라는 나라의 침공을 의미합니다. 사단에 완전히 사로잡힌 라는 나라에 하나님이 침공해 들어오신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침공해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에게 침공해 들어오신 그 왕을 우리는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외칩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유대인들이 외친 것처럼 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의 육적인 왕이 되시어서 내 앞에 걸 거적거리는 저 모든 나의 원수를 치우시고, 나의 육적인 길이 탄탄대로가 되게 하시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나에게 침공해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같은 나의 요청에 침묵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뜻을 따르시지 않으셨던 것처럼 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유대인의 왕으로 들어오시면 우리들의 세상 뜻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그 완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는 종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유자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자유자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면,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제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오직 예만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로 실행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실행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자신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실행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들어오셨다면 우리는 더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하나님의 뜻은 실행되십니다. “너희에게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6)”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바로 우리가 세상에서 죽는 그 날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죽으면 바로 예수의 날이 시작됩니다.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참교회라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사단처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큰 방해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적 자아, 옛사람입니다. 그 옛사람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말씀의 길을 선택만 한다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를 향한 근심을 할 필요도 없고, 염려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그분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깨달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 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것,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는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하신 말씀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록된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17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 말씀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것을 본 자들이 인제 예수 그리스도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과 십자가의 죽음이 기록된 말씀에 의한 것임과 그것을 제자들도 알았다는 것을 증언하는 증언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큰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은 바로 죽은 나사로를 무덤으로부터 살리는 것을 들었음이라고 합니다. 바로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불러내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성의 입성을 예비하신 것임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그 말씀의 상징이 된 인물입니다. 그 나사로의 소식을 들은 큰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입성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호산나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론의 흐름에 압도된 바리새인들은 서로 말하기를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쓸데 없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그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잡아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려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이러한 거대한 여론의 흐름에 감히 예수 그리스도는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가룟 유다가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팝니다. 바로 그 가룟 유다 때문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대로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결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의 때문에, 그들의 권력에 의해 십자가 죽음에 이르신 것이 아님을 뚜렷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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