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9. 빛과 어두움의 세계(요12:44-50)

관리자님 | 2020.05.18 12:49 | 조회 222

59. 빛과 어두움의 세계(12:44-50)

 

44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육체를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과 분리되어 어떤 다른 장소에 다른 모양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가지진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표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육체로 보이실 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표출시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육체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밖으로 표출되시는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위를 통해 밖으로 표출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육체를 가진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표출되시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그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밖으로 표출시켰습니다. 단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들의 영속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혼에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시어 말씀하게 하였습니다. 역시 예전부터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들어가셔서 그분을 외부로 표출시키시는 속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부터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속에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연합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은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시어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하나로 연합되실 때 하나님 아버지도 그 영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0:14, 14:10, 11, 14, 그 외 다수 구절). 그러므로 육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육적 현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두움은 어떤 어두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적 어두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영적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영적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밝히실 그 빛은 어떻게 사람들의 영적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까? 지난번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믿고 영접하여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것을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이 세상의 육적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일들, 말씀 등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구약성경에 너무나도 능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는 어두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알고 있었던 구약성경의 지식은 그에게 아무런 빛을 비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이 사도바울 속에 들어가셨을 때 그의 삶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속에 들어가셨을 때 바울에게서는 구약성경이 참으로 깨달아졌습니다. 그 구약성경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을 때는 성경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구약성경의 피상적 지식이 만들어낸 종교 제도에 묶인 제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피상적 성경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의 종교적 열심으로 스데반을 죽이는데에도 동참하였습니다. 이것인 피상적 성경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종교적 열심이 빚어낸 삶의 결과물입니다. 피상적 성경 지식을 가진 자가 종교적으로 제도화되어, 스스로 열심을 내게 되면 사람을 죽이는 데 동참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겉으로는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상 성경을 경험으로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종교적 제도에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곧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사도바울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참 빛이 바울에게 들어왔을 때 바울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빛이 한 사람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 속에 로고스의 말씀이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으로 인한 생명력이 그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로고스의 말씀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은 살아있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 로고스의 말씀이 한 사람에게 들어가면 그 말씀은 그 속에서 그를 이끌어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로고스의 말씀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이 만들어낸 제도 속에서 가지는 지식의 속성은 어떨까요? 공자가 유교 사상을 창시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공자의 유교 사상을 인생의 올바른 길을 가는 가르침으로 삼고, 그 사상을 기초로 한 제도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유교 사상이 만들어 준 제도 속에서 그 유교적 지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는 제도가 한 인간에게 가져다준 껍데기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유교 사상은 그 자체가 로고스의 말씀과 같이 살아있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도 일체 식민주의하에서 공부할 때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자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상으로 공산주의라는 한 제도를 만들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 사상은 사람들을 이끌어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상을 이용하여 제도를 만들고,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그 사상이 그 사람을 이끌어 간 것이 아닙니다.

 

이같이 세상의 인간에게서 나타난 거대한 사상과 같은 지식은 인간의 내면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이 아닙니다. 사상을 만들어낸 공자나 마르크스와 같은 자들은 그 지식이 혼의 세계에서 나온 것이며, 공자나 공산주의 사상을 따르는 자들은 모두 그것의 제도로부터 나온 지식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은 모두 인간의 껍데기로부터 온 지식입니다. 한 인간의 외부로부터 온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지식은 그 지식 자체가 살아있어서 그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없습니다. 단지, 사람이 그 지식을 배워서 자신이 그 지식대로 살려고 노력하여야 하는 그런 지식의 세계입니다. 이는 사실상 영적 관점에서는 어두움의 세계입니다. 빛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로고스 말씀의 지식은 이와 같은 지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는 인간의 본체인 영과 연합된 성령에게서 나오는 지식입니다. 영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은 그 배 속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생명력을 가집니다. 이런 지식이 빛의 세계입니다. 한 사람에게 이 로고스의 말씀이 들어오면, 인제 그 로고스의 말씀은 그 사람의 영 속으로 들어오고, 스스로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 영을 살리고, 그를 로고스의 말씀이 스스로 이끌어가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스스로 자의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가는 객관적 삶을 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사도바울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에게 로고스의 말씀이 들어가기 전에서는 율법으로 만들어진 율법 제도 속에서 율법의 지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유교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처럼 외부로부터의 율법이라는 종교적 제도가 그에게 가져다준 율법적 지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그의 종교적 열심히 그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 자신이 그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율법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 자신이 항상 삶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로고스의 말씀이 그에게 들어왔을 때 그는 그 스스로, 자의적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없었습니다. 그의 속에 있는 로고스의 말씀이 그의 삶을 규정지었고, 그의 삶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가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교회의 목회자로 발탁된 것도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 간 삶입니다. 그가 안디옥교회에서 4차례의 선교여행을 한 것도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 간 삶입니다. 로마로 간 것도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 간 삶입니다. 자의적으로 살아간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그의 영으로부터 나온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상이나 제도로부터 나온 삶과 영, 로고스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삶의 차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이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심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합니다. 인간은 아담이 죄를 범하면서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범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구원은 곧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오시는 그 구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와 로고스의 말씀으로 그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48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어가시는 길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말씀을 받아들인 자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지 아니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 즉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그것이 그를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49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하신 그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고스의 말씀이십니다. 육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로고스의 말씀이 삶을 이끌어가셨습니다. 자의적으로 살지 못하셨습니다. 그분 속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명령이 곧 영생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로고스의 말씀이 이끌어가는 삶을 사시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그것이 곧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인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그 속에 로고스이 말씀이 들어와 그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자의적으로 세상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자들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은 곧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셔서 세상에 육체에 계실 때와 똑같이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도 그 영생을 선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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