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5-2. 길, 진리, 생명, 그리고 믿음(요14:4-10)

관리자님 | 2020.06.13 18:08 | 조회 190

65. , 진리, 생명, 그리고 믿음(14:4-10)

 

4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어디로 가는 그 길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영적 관점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자 중 도마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도마는 육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미 당신이 어디로 갈지 안다고 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가시는 곳인 그 아버지가 계신 곳을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그곳을 안다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을 알려줍니다. 그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유명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곧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바로 자신이 그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영적 길이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영적 관점에서의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길이라는 말씀에서 길을 영어로‘the way’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그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바로 그 길, 즉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곧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영적 관점에서는 경험한다는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로고스의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말씀을 깨닫고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경험하면 곧 예수 그리스도는 아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을 알고, 그는 이미 그 아버지가 계신 곳에 그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는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5:4)”고 하자 베드로가 그 말씀대로 하여 배가 물에 잠길 듯이 물고기를 많이 잡은 그것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5:4)”라고 하시는 기록된 말씀과 같이 존재하십니다. 누구든지 그 기록된 말씀을 자신에게 말씀하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하여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경험하는 그때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가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 그렇게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이와 같은 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디베랴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 주님이시면 저도 오라 하소서 하여, 그는 물 위도 믿음으로 걸어간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사람에게 오고, 그 말씀을 경험하는 그것을 통해서도 옵니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도 말씀이며, 말씀을 통한 현실 세계에서 말씀이 이루어짐도 말씀입니다. 그 두 종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는 격발 장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하자, 베드로는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그 최소의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는 말씀이 자신에게 들려와야 합니다. 그 말씀이 들려야지 그것을 행할 것인지, 행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할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육체를 가진 인간의 의지적인 결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그 말씀은 바로 이 인간의 의지적인 결정 부분 때문에 나온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겠다는 인간의 의지적인 결정은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드러냅니다. 그때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며가 바로 이렇게 임하는 나라, 곧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게 임하는 천국을 보고,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게 되고, 결국 그분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믿음으로 천국은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그 나라를 드러내시는 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믿음은 신약시대에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칭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믿음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 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기 힘들었기 때문에 항상 그 법을 지키는 데 급급했고, 율법을 범하면 제사를 통해 그 범법함을 씻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음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축복받기에 바빴고, 제사를 통해 형벌을 면하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제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드리는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번의 제사를 통해 마감되었습니다. 인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사람들은 영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영의 차원, 즉 하나님의 아들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시대에는 율법의 지키는 것과 제사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천국을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천국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천국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늘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천국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믿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존재들의 운영원리 아니겠습니까? 이는 곧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 사람과 연결되는 데 필요한 것 역시 믿음입니다. 사람이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단어도 역시 영어로 ‘the truth’라는 것으로 정관사 ‘the’가 들어갑니다. 이것도 역시 그 진리라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 세계 중심은 역시 영의 세계입니다. 진리는 결국 영의 세계를 말씀하는 것으로 그 세계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육의 세계를 통제합니다. 따라서 육의 세계에서는 영의 세계를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 영의 세계는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되어있습니다. 그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그 영적 지식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그 믿는 자들에게 그 진리가 경험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라는 말씀에서 그 침노하는 자가 바로 믿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자들이 천국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천국은 열려있습니다. 완전 자율경쟁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가진 자는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 안에는 생명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만물을 소성시키는 근본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듯이 무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능력을 말합니다. 죽은 것이 살도록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신데,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생명은 죽은 자를 살게 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 붙은 자를 모두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곧 생명이라고 합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빛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죽음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the life’라는 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정해진 죽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요? 영적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세상 세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영적 세계에서의 삶의 개념은 영광이며, 죽음은 형벌입니다. 영적 세계에서의 죽음, 즉 사망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 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형벌입니다. 영적 세계에서의 삶, 즉 생명은 영광의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 생명을 가진 자도 영광인 것입니다.

 

이 영광은 그리스도인이 되면서부터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영광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빛이 나는 것입니다. 영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빛이 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상 영광이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형벌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사람은 영적 관점에서 그냥 빛이 전혀 없는 형벌입니다.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빌립의 육적 관점의 생각입니다. 본질상 하나님 아버지는 볼 수 있는 분이 아닌데 그가 육이기 때문에 육적으로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답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영적 관점입니다. 영적 관점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으로 보이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영을 통해 마음으로 보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육체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와 같이 대답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빌립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믿음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라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 하셨던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알려줍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말씀 전파하시는 그것은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기록된 말씀을 읽고 깨달아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깨달아 그것을 전달하는 바로 그때 하나님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겉으로는 말씀 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전파하는 그 순간은 그가 말씀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일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파하면, 그도 하나님이 일하는 반열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큰 영광된 직분을 주신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말씀 전파할 때에는 영광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238개 (4/12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6.13
박기묵
MP3
2020.05.18
박기묵
MP3
2020.05.18
박기묵
MP3
2020.05.18
박기묵
MP3
2020.05.18
박기묵
MP3
2020.05.18
박기묵
MP3
2020.04.25
박기묵
MP3
2020.04.25
박기묵
MP3
2020.04.25
박기묵
MP3
2020.04.25
박기묵
MP3
2020.03.29
박기묵
MP3
2020.03.29
박기묵
MP3
2020.03.29
박기묵
MP3
202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