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0.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요11:11-26)

관리자님 | 2020.02.28 18:51 | 조회 203

50.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11:11-26)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나자로가 죽자 나사로가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죽음을 보는 관점입니다. 잠자는 자는 깨우면 된다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잠을 자는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자 제자들은 잠들었으면 낫겠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의 관점은 그냥 사람이 잠잔다는 관점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잠잔다는 것을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관점의 차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물을 바라볼 때 영의 관점에서 바라보십니다. 결코, 육의 관점에서 바라보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로가 죽을 때 그곳에 있지 아니한 것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뻐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완전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보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믿음을 경험으로 가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적 세계는 경험으로 아는 세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방법은 직접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는 것을 경험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임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죽어서 육체의 모든 기관이 썩어가는 것도 다시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로고스의 말씀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에 부활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활의 능력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믿게 하려고 그것을 현실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썩은 육체에 다시 생기가 생길 수 있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고 합니다. 이는 나사로가 죽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아마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 그리스도가 오지 않아서 원망도 했을지 모릅니다. 이는 이 시대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질병에 걸렸거나,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기도에 바로 응답을 해주셔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는 왜 그럴까요? 그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질병이나 문제를 통해 무엇인가를 고치시기를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발견해야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면 마술처럼 바로 응답을 받고 싶어 합니다. 기도하면 바로 병도 고쳐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그 질병이나 문제를 통해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은 대부분 생활 습관입니다. 좋지 않은 세상적 습관입니다. 그것을 빨리 발견하고 고치면 질병이나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육적 생활 습관을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나 질병이 없어지지 아니한다면 사도바울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사단의 가지, 즉 약한 데서 온전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여기 나사로의 사건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극적인 반전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생명력의 역사를 삶 속에서 경험하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할 때 끝까지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조금 있으면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 채 늦게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극적인 순간을 보게 되는 축복을 가진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상황 반전의 사건은 바로 이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한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 때 나사로가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먼 훗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입니다.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그대로 하면 바로 현재 그것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마지막 부활 때에는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리스도는 바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것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은 바로 지금 그 부활과 생명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를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의미는 현장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 부활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은 바로 그 현장에서 그 부활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과 생명의 속성이 그에게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라는 것이며,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존재합니까? 바로 말씀으로 존재합니다. 이는 곧 말씀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활이요 생명인 그 말씀이 사람에게 작동이 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떨까요? 그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그 사람의 영이 활성화되어 성장한다고 계속하여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을 깨달으면, 그 영이 그의 혼에게 말씀에 의한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면 그 혼은 부활과 생명의 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혼이 곧 부활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혼이 그 사람의 육체를 움직이도록 사인을 줍니다. 그 육체가 그 사인을 받고 움직이면 그 육체도 부활과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말씀이 그리스도인에게 들어가는 과정을 거친 자들은 그의 영과 혼과 육이 모두 부활과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과 혼과 육에 그 속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영이 살아 움직이고, 혼이 생명력이 넘치며, 그 육체가 부활과 생명의 능력이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혹 그에게 질병이 있다면 그 부활과 생명의 능력에 의해 삼킨 바가 되고, 그에게서 모든 사망의 것들이 생명에 의해 삼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속성이 부활과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부활과 생명의 속성이 자신에게 들어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오는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너무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영향을 받아 사망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후패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그 육체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의 씨를 담는 영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 영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죽어가는 육체에 부활과 생명의 속성이 들어간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속성을 가진 자들은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과 생명은 사망을 이기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속에 있는 부활과 생명의 속성이 작동만 되면 사망의 세력은 삼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런 능력자들입니다. 이를 결코, 잊어버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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