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2. 예수님의 교훈과 한 가지 일(요7:14-24)

관리자님 | 2019.10.19 11:11 | 조회 250

31. 예수님의 교훈과 한 가지 일(7:14-24)

 

14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14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초막절의 중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그동안 공생애 기간 동안 세 번째 유월절에 올라가시지 않으신 것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유월절에 유대에 올라가셔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은 특이하다고 이전에 이미 이야기 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를 깔고 누어있었는데, 그 병고침을 받은 후 그가 깔고 있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그곳에 일어난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쳐진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력이 세상세계를 강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고친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에 의해 안식일을 범하게 한 대표적 사건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그들의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그들의 법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베데스다 못에서의 병고침의 사건을 통해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이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 번째 유월절에 유대에 올라가시지 않고, 오순절, 초막절까지 올라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초막절 중간에 예수님은 유대에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영적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때가 되어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때를 만들기 위해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전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스스로 알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때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때를 만들기 위해 초막절 중간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죽이려하는 것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교훈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려했다면 성전에서 가르치지 않으시고 숨어서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기 위해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장로들의 중심적 모임 장소에서 복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가르침은 완전히 인간적인 것이며, 하늘로부터 나온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셨습니다.

 

15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그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보고 그들은 놀랐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글을 배우지 아니하셨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교훈을 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칠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가르치느냐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21:23)에서는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합니다, 누가 여기서 가르칠 권위를 주었느냐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한 그들의 도전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질문하시면서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지 답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16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객관성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당신이 가르침으로 인해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세상에서의 가르침은 하늘로부터 온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한 영적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의 본질이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율법선생들의 가르침은 육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육적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저기 서기관들과 같은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가르침은 생명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세상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와 같은 가르침을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만 하는지 알려줍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고, 그것을 행하려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정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가르침이라는 것이 분별만 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율법선생들의 가르침은 하늘로부터 나온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로부터 나온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도 모세의 율법을 공부하고, 그 모세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세의 율법에 해석은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대한 해석도 하늘로부터 나온 해석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으로 행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나온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나온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세상적인 지식으로 전락시키는 가르침을 행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율법을 이용하여 선생노릇을 하고자 하였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영광 받으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모세의 율법을 세상적인 차원에서 해석함으로써 율법을 세상의 종교적인 지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이 시대에도 비일비재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수많은 해석자들이 세상적인 차원에서 해석함으로써 그것을 종교적인 지식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단 종교의 교리가 이 성경으로부터 나왔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이단들의 성경해석을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이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것을 행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이 왕이 되고, 자신이 영광 받으려는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위해한 생명의 지식을 육적인 지식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왕이 되고, 영광으로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은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그 자신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 선생노릇을 하였고, 존경을 받았고, 치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종교로 타락시켰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를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풍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가지고 지도자들이 영광을 받거나, 하나님의 핑계한 세상 제국을 건설하려고 하는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이 일반 성도들이 보기에 헷갈리는 것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표방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를 표방하면서 이와 같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믿음생활을 한 것입니다. 기도, 금식, 구제 등과 같은 것을 사람들 보기에 철저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짓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습니다. 그들이 종교적 열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불의가 없는 완전한 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가져야할 자세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시는 어디에서부터 나옵니까? 그것은 물세례로부터 나옵니다. 완전한 물세례, 완전한 회개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이 완전한 물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그때부터 영적 분별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주시는 영적 분별력이 하늘로부터 오는 가르침과 육으로부터 오는 가르침을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이는 본능적으로 되는 영적 분별입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가르침을 받으면, 그도 하늘로부터 오는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19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예수님은 성전에서 유대인들(종교지도자들)에게 핵심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사단의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영적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실상은 그들이 귀신이 들린 것인데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로 보건대,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후부터 이미 그 음모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병 고침을 통해 안식일을 노골적으로 범하게 한 그 일은 유대교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들의 이 안식일 법이 무너지면, 유대교는 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다시 유대에 나타난 것입니다. 유대에서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정면으로 하늘로부터 온 교훈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겁이 나서 잡지 못했습니다.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핵심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일을 행하셨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 일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행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든 자를 온전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뜻이었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입니다. 즉 사랑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상히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 법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이 만든 세상 지식의 진, 생각의 진에 의해 꽉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세상의 생각에 묶이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안식일 법을 정해 놓고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 병자를 고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거침없이 행하셨습니다.

 

22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예외의 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할례입니다. 안식일에도 모세의 법에 따라 할례를 행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것은 할례를 행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진정 무엇인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애지중지하게 아끼는 그 안식일 법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법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스스로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 법은 나 혼자만 섬기면 안 되고,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잘 섬겨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외적으로부터 침범당하지 않는다는 그런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안식일 법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모세가 정한 형벌을 주었습니다. 안식일 법은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냥,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법을 만들어 내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교회에서 난무하는 은혜의 가르침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 금식, 헌금, 십일조, 선교헌금, 감사헌금, 일천번제헌금, 교회봉사, 주차정리, 교회에서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 이웃사랑, 구제 등등 오만가지 것들을 통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없애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는 결코 두려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없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 생명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자연적으로 두려움을 없어지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말씀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어떤 행동도 이 두려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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