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3-1. 오병이어의 이적과 신령함(요6:1-13)

관리자님 | 2019.08.19 17:21 | 조회 247

23. 오병이어의 이적과 신령함(6:1-13)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 예수님이 세상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시는 장면입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큰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빌립에게 이들을 떡을 사서 먹일 것을 질문합니다. 이에 빌립은 각 사람들이 조금씩 먹는다고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고자 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먹이실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시험한 것입니다. 빌립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영적차원을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적차원에서 이 사람들 먹일 일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적차원에서 사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마태복음을 묵상할 때 이 오병이어의 말씀을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떠오른 생각은 예수님만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니 엘리야와 엘리사도 이와 같은 일을 행하였다는 것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이 이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일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경우에는 사렙다 과부의 집의 밀가루 통의 한 끼 분량의 밀가루와 기름이었고, 엘리사는 죽은 선지자 생도의 부인이 가진 기름병의 기름 조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생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고, 5,000명을 먹이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이 말씀이 너무나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이 부분의 말씀은 목회자들이 전하기 꺼려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너무나도 감동되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의 묵상에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펼치는데 있어서 사람이 할 일은 아주 작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큰 일을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 작은 일이 없으면 하나님의 큰 일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준비해야만 하나님은 5000명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이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5000명을 먹일 수 있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현실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5000명을 먹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5000명을 먹이려고 하니 그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냥 하늘의 음성을 듣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병자들이 제자들에게 오면 자신이 병자들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단지 말씀으로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치려고 하기 때문에 병자가 기도해 달라고 오면 안 고쳐지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전하면서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너무나도 많이 사람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말씀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여러 번 들어서 다 알고 있으니 성령님 새 말씀을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축사를 통해 떡과 물고기를 신령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보면 물질이 하나님의 신령함이 있으면 생명의 물질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라의 쓴물이 단물이 되었고, 여리고 성의 물이 나빠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엘리사는 물의 근원에 소금을 뿌려 물을 신령하게 하여 그 성읍에 생명을 불어넣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물질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신령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에게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너희들은 이 돌보다도 더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무생물인 물질도 신령하게 하면 그 무생물에 생명력이 들어가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데 너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도저히 신령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되면 이는 구제 불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있었던 물질이 신령하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을 기초로 하여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를 통해 신령하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축사를 통해 보리떡과 물고기를 신령하게 변화시키자 그 보리떡과 물고기는 더 이상 축사 이전의 속성의 보리떡과 물고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떡과 물고기는 5,000명을 먹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세상의 떡과 물고기가 더 이상 세상의 떡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떡과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변화하자 그 떡과 물고기는 비록 다섯 개와 두 마리였지만 5,000명을 먹이는 일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떡과 물고기에 신령함이 불어넣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세상의 물질에도 신령함을 불어넣어 구원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이 떡과 물고기에 신령함을 불어넣으니 5,000명이 먹고 배부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물질 대신 사람에게 신령함을 불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령함을 불어넣은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복음을 전파하려 보내셨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보고하기를 자신들이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들의 질병을 고쳤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신령함을 불어넣고 싶어 하시는 물질적 존재는 무생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무생물에 신령함을 불어넣었을 때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에게 이 신령함을 불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 사람에게 이 하늘의 신령함이 들어갔다면 그는 5,000명에게 단순히 한 끼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5,000명의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 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즉 사람들에게 신령함을 불어넣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함을 불어넣기 가장 어려운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 시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성경을 많이 아는데 피상적으로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아는 그 성경지식으로 인해 하늘의 신령함이 불어넣어질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 지식 때문에 망한 자들과 같습니다. 하늘의 신령함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한 사람도 살려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차라리 돌들을 신령하게 만드는 것이 구원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정도로 구제불능의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두개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현세주의자들입니다. 현실이 너무 좋아서 세상의 육적인 향락과, 부와 풍요함에 빠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자신의 육적인 복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늘의 신령함이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오병이어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신령함에 집중하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늘의 신령함은 어떻게 옵니까? 신령하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심으로 옵니다. 인제 그때부터 우리에게서 신령함을 생수를 쏟아내는 것같이 흘려 내리도록 하시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는 것은 육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육적인 것이 남아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성경 한 구절입니다. 성경지식이 아니라 한 구절입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신령함이 우리 속에서부터 흘러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성경 한 구절 묵상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육체는 신령하게 바뀌어 5,000,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신령함에 집중하면 세상이 굴복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육적 전리품들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조심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계속 신령함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전리품 때문에 신령함에 대한 집중력이 흩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세상을 정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은 쉽게 점령하였지만 아이성은 곧바로 점령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 오병이어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결코 신령함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5,000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찼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알려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번성함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이런 풍성함과 번성함은 신령함의 결과물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육적인 풍성함과 번성함에 집중력을 빼앗기면 그 다음은 세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끝가지 신령함에 대한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238개 (7/12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MP3
2019.10.19
박기묵
MP3
2019.10.19
박기묵
MP3
2019.10.19
박기묵
MP3
2019.10.19
박기묵
MP3
2019.10.19
113
박기묵
MP3
2019.10.19
112
박기묵
MP3
2019.10.19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9.14
박기묵
MP3
2019.08.19
박기묵
MP3
2019.08.19
박기묵
MP3
2019.08.19
박기묵
MP3
2019.08.19
박기묵
MP3
2019.08.19
박기묵
MP3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