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4-2. 진정한 왕과 진리안의 자유(요6:14-21)

관리자님 | 2019.09.14 13:32 | 조회 289

24. 진정한 왕과 진리안의 자유(6:14-21)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16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1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21.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1.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신데 사람들은 그들의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왕이 되어 세상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육적인 삶을 위해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수많은 삶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와 같은 자를 자신의 왕으로 삼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자로 예수님이 왕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행태는 구약의 사사시대 말기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사시대 말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늙은 사무엘에게 왕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본래 이스라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는 것인데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 왕을 세워서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은 이런 백성의 장로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기도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이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림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말을 듣되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에게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이 알려주신 왕의 제도를 백성들에게 설명합니다. 왕의 제도가 생기면 왕이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고, 그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며, 그가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고,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 같이 왕이 있어서 우리들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의 제도를 허락합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 전쟁을 할 왕을 요구한데에는 그 배경이 있습니다. 그 배경은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견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알려주기 위하여 레위지파를 12지파에 흩어지게 하여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교육제도로 레위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삼아 그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고 12지파에게 파견하는 방식으로 각 지파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제도가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에는 마치 우상숭배를 하듯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되자 외적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왕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의 제도를 허락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신 왕의 제도는 사람인 왕이 만약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당신을 잘 반영한다면 그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에 왕을 세웁니다. 첫 번째 왕이 사울입니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가 육적인 왕의 권력에 눈이 가려져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왕이 다윗입니다. 그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그와 같은 자를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삼으면 이스라엘을 그 왕을 통하여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왕의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윗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왕이었고, 히스기야, 요시야 등이 있긴 하지만 그 외 솔로몬, 여로보암 등 모두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왕의 제도는 육적인 인간의 속성 때문에 결국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했었던 왕 다윗만이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로 다스린 왕이었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제도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육적으로 구속한 제도로 다윗 시대만 백성들을 잘 다스렸고, 나머지 시대에는 백성들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육적인 조직이 백성들을 하나님과 멀어지는 하는 위험성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조직의 왕이 다윗과 같으면 그것이 올바로 이끌려 질 수도 있지만 다윗과 같은 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 시대에 백성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육적인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들도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쫒아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들을 위해 전쟁하고, 먹여주는 왕으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도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을 영적인 왕이 아닌 육적인 왕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예수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예수를 믿으면 조직을 만들려고 하고, 조직에 소속되려고 하고, 또 조직의 장을 맡아서 육적인 왕 노릇을 하려는 자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법이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데 수많은 파와 수많은 조직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조직에 소속되어 그 제도에 묶여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잃어버리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왕의 제도를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들의 자유가 침범당하지 않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자유가 본성인 예수님이 우리들의 왕이 되시기만 하면 우리들은 완전한 자유자가 되기 때문에 세상의 제도에 다시 묶여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왕이 되시기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자유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이 한 구절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깨달아지면 우리는 완전한 자유자가 되어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세상의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질병, , 권력, 명예, 제도, 열등감, 우월감, 자동차, 핸드백, 사람, 상처 등 세상의 육적인 가져다 준 그 모든 것에서의 해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자유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2. 두 번째 문단은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것은 진리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는 세상의 자연법칙에도 묶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자연법칙이 묶을 수 없는 경지까지 미치는 자유를 예수님은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자유까지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도 자유를 얻게 되면 예수님처럼 물위를 걸을 수 있을까요?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베드로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라 했을 때 베드로도 물위를 걷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유에 베드로도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에게 나의 자유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들 모두에게 오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들도 나의 자유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잠시 그 예수님의 자유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에서 곧 나오게 됩니다. 언제 들어가고, 언제 나오게 됩니까? 들어간 것은 오라는 말씀을 듣고 행동할 때 들어갔고, 나온 것은 바람을 쳐다본 후입니다. 바람을 보았을 때 베드로의 자유는 침범당한 것입니다. 그 바람은 무엇입니까? 환경입니다. 사람이 환경을 쳐다보면 그리스도의 자유를 침범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았을 때 베드로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믿음이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십니다. 이는 육을 입고 있는 사람의 속성을 알려줍니다. 육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속성은 환경을 쳐다보면 두려움이 찾아오고, 두려움이 찾아오면 믿음이 작아져서 의심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이 주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됨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자유를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자유이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의 환경 속에 있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환경 속에 들어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환경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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