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7-2. 생명의 떡(요6:41-51)

관리자님 | 2019.10.19 11:01 | 조회 238

27. 생명의 떡(6:41-51)

 

41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이를 육적으로 이해하여 서로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였는데 이들은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 예수님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려줍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육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육적인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육적인 관점에서 전도, 선교, 기도, 구제, 금식, 주일성수, 십일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생활을 하는 자들은 성경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연결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나타나는 기도의 응답이나, 능력있는 삶, 믿음이 작동되는 삶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까요? 그것은 지식을 따른 믿음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이 어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을 따라 믿음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 말씀은 말씀을 통한 믿음이 자신에게 나타나서 그것이 그 믿음이 이끌어가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본문은 그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라는 말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수군거렸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요셉의 아들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부모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에서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육체를 가진 자들이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에서 온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아무리 나에게 오고 싶어도 하늘의 아버지가 이끌지 않으면 누구도 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이 아버지가 이끄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 듣고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우는 것일까요? 그들이 아버지를 보고 배운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웠다는 것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본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만이 보았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버지께 듣고 배우는 것도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임을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영접하는 자들만 아버지께 배운다는 것이며,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없으며, 영적 세계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길이라는 것은 인간이 갈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며, 진리라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진리도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며, 생명이라는 것도 오직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이는 영적인 말씀입니다. 육적인 떡을 생각지 말고 영적인 떡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생명의 떡은 먹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영적인 떡도 육적인 떡을 먹는 것처럼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떡은 육체에 생명을 주어 활동하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떡입니다. 이와 같인 영적인 생명의 떡은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영이 생명을 얻어 영의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했을 때의 생명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복음 1장에서는 생명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말씀, 즉 로고스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이 빛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빛이라는 것은 영적인 빛을 의미합니다. 생명은 곧 사람들에게 영적인 빛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없는 자들은 생명의 세계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들이며, 영적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생명의 빛이 자기 땅에 왔으나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생명의 빛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어둠의 세계를 밝혀주는 빛입니다. 죽음의 세계를 뛰어넘는 그 영적 세계를 알려주는 빛입니다.

 

이 생명은 영적 세계를 밝혀주는 빛의 역할도 하지만 만물을 소성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또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 속에만 들어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영접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 생명이 그 속에 들어가게 되며, 그렇게 되면 그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게 됩니다. 한 육체의 사람을 거름더미의 삶에서 귀족의 삶으로 이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그 생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특이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사람들 속에 들어오면 그 생명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의 목적대로 생명의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소성시키는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생명의 활동을 세밀하게 분별할 줄 아는 자들로 그 생명이 자신의 육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하는 자들입니다. 이 생명은 육체에 들어오면 결코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속성대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 생명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육체는 그 생명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생명은 생명을 창출하는 근본 속성을 달성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게 하늘의 신령함이 불어넣어 졌더니 스스로 그 신령함의 떡과 물고기가 생겨나서 5000명을 먹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지진 생명의 한 속성입니다. 생명의 예수님이 육적인 음식에 그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때 그 육적인 음식에 생명력이 들어가서 5000명을 먹이는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자들에게 생명이 들어오면, 그 생명은 계속하여 생명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육체를 가진 자들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입니다. 육체에 주어진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속성에 익숙해져 있는 육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죽은 자의 자유, 거짓 자유를 행사하지 않고, 산자의 자유, 즉 속사람의 자유만 행사한다면 위대한 생명의 역사를 창출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영적인 오병이어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창조하는 방법의 첫걸음은 내 속에 선을 쌓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속에 선이 쌓이게 되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그 쌓은 선에서 선이 나오는 경건이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영적인 아비의 분량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영적인 경지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그가 말을 하면 그것이 곧 성경의 말씀이 되어버리는 그런 경지입니다. 그가 말하면 그것이 바로 말씀이 됩니다. 이런 자들이 되면 곧 그는 육체를 입고 있지만 더 이상 육체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러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818절에는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의 입에 하나님의 말을 두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치신 자이시며,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거하게 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육신은 육체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와 같이 육신을 입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 육체에서 말씀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말씀이 되면 신명기의 말씀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말이 우리들의 입에 두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인치신 자들에게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였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실까요? 바로 이와 같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일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쉼 없이 선을 쌓으라고 합니다. 무엇이 선일까요? 하늘의 음성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선이며, 행하는 것도 선입니다. 둘 다 선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음성을 하나를 들으면 두 개 이상의 선을 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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