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 베데스다 못과 예수님의 병고침(요5:1-9)

관리자님 | 2019.07.27 20:44 | 조회 227

18. 베데스다 못과 예수님의 병고침(5:1-9)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 베데스다 못은 천사의 신령함이 물질세계에 순간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소입니다. 베데스다 못에 천사가 내려오면 제일 먼저 그 못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그 신령함이 옮겨져, 그 신령함으로 인해 사람의 질병이 고쳐졌습니다. 본문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도 인간의 질병이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병고침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병고침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는 병고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병고침입니다. 이는 질병을 가진 자가 신령한 것에 노출될 때, 일어나는 병고침입니다.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은 모세의 얼굴의 광채나 바울의 손수건과도 같이 한 사람의 병을 고치면 없어지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의 신령함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신령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비함을 한번 체험하는 그런 종류의 신비함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런 신령함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신령함은 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신령함입니다. 베데스다 못의 신령함과는 완전히 다른 일회성이 아닌 영원함 신령함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져다주신 축복입니다. 이런 신령함이 있는 자들은 세상에 그 신령함으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신령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흘려질 수 있을까요?

 

2. 베데스다 못에서의 병고침은 예수님의 병고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은 단순한 병고침 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병고침은 단순한 병고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의 사역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병자들의 믿음을 보고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믿음을 보고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지로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38년 된 병자의 병을 고쳐주셨을까요? 이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은 병고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데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베데스다 못에서의 병고침은 유대의 한 복판에서 유대인의 최고의 율법적 전통을 깨뜨린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틀을 깨버린 것입니다. 그 틀은 복음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지역에서는 표적과 기사로 고향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깨트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유대인의 종교적 틀을 깨트립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은 이와 같이 단순한 병고침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금방 고쳐주실 때도 있지만 상당한 기간을 끄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는 그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다른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병이 고쳐지는 관점만 가지면 그 병고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병고침의 사건을 전체 구속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 사건 이후 유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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