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 세상의 중심과 번성(창1:14-23)

관리자님 | 2021.02.13 19:30 | 조회 295

2. 세상의 중심과 번성(1:14-23)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하늘의 궁창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징조는 계절에 따른 변화나 달의 변화 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큰 광명체인 해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인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별을 만드시고,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였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였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였습니다.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여기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은 바로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 이를 하늘에 두어 그것들이 땅을 비추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해과 달과 별이 땅을 비추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전까지는 몰랐으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별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압니다. 수억만 개의 태양계와 같은 것들이 모여, 은하계를 이루고, 수억만 개의 은하계가 모여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수억만에 수억만 개의 별들이 모두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비추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의 중심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아니라 바로 이 땅입니다. 이 모든 광명체는 이 땅을 향해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전체 우주보다 지극히 작은 지구의 이 땅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는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을 위하여 해와 달, 수많은 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위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통해 영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 세계의 중심에도 역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적 존재로 세상을 관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사람은 그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그 성전인 사람들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하여 영적으로 관찰하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 중요합니다. 마치 세상의 창조에서 이 땅이 모든 해와 달과 별들의 중심이듯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존재물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은 세상의 중심이며, 영적 세계의 중심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세계는 이렇게 펼쳐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영적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 각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새 창조인 생명을 창조하는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온 세상, 즉 영적 육적 세상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교회는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임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잘 진행할 수 있게 하려고 혼자 두지 않고, 교회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빛이 있으면, 그 빛은 영적 어두움을 걷어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실상 혼미케 하는 영들이 그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혼미케 하는 어둠의 영들에 의해 둘러 싸여 있는 그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빛입니다. 그 하나님의 빛은 곧, 깨달음의 말씀입니다. 이는 말씀 묵상을 통해 성령이 주시는 음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묵상을 통해 나오는 그 말씀만 있으면, 혼미케 하는 영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빛은 받은 영은 활성화됩니다.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로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였습니다. 이는 빛이 창조되기 전 처음의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런 어둠과는 다릅니다. 이 어둠은 곧 조금 있으면 낮이 되는 어둠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어둠은 빛이 없는 어둠이지만, 이 어둠은 빛이 있는 어둠입니다. 그래서 달이 그 어둠을 주관하게 한 것입니다. 해를 통해 반사되는 달의 빛이 그 밤의 어둠을 비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둠은 곧 없어지는 어둠이며, 낮을 준비하는 어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어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적 어둠은 곧 없어지는 어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빛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 빛이 곧 그에게 비칠 것이기 때문에 순간적 어둠은 그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적 빛이 비치지 않는 영역이나 시간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인지하기만 하면, 그러한 어둠은 곧 없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둠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어둠 영역은 그들의 혼과 육체입니다. 그 혼과 육체 때문에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 어둠을 빨리 인식하면, 그것은 곧 사라집니다. , 혼과 육체의 영역에 영적 빛이 비치면, 그 영역의 어둠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어둠은 희망이 있는 어둠입니다. 곧 낮으로 바뀌는 어둠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없어질까요? 그것은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눈은 몸을 밝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눈은 영적인 눈을 의미합니다. 그 영적인 눈은 성전인 사람의 몸을 밝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전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눈이 성하면, 어둠은 없어집니다. 그 어둠은 어떤 모양입니까? 그것은 영적 어둠과 육적 어둠이 있습니다. 영적 어둠은 눈이 말씀을 모르는 어둠이며, 육적 어둠은 가난, 질병, 환란, 당짓는 것, 음란, 색욕, 중독 등 여러 가지 육적 더러움을 의미합니다. 그런 어둠은 바로 영적 눈이 열릴 때 비로소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눈이 열리기만 하면 새벽이 오듯이 그 어둠이 물러가게 됩니다. 질병이 물러가고, 가난이 물러가고, 문제가 떠나가고, 무질서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둠이 가고 새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창조된 다음의 어둠은 희망을 품고 있는 어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어둠이 찾아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적인 밝은 눈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것을 빨리 깨닫고 영적 눈을 가지면, 어느 정도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그 어둠은 물러갈 것입니다. 그것이 질병이라 할지라도 물러갈 것입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있는 어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눈으로 극복할 대상입니다. 그 어둠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옛것은 가고 새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고 합니다. 물이 생물을 번성시키는 기초임을 알려줍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물과 함께 번성하게 됩니다. 물이 있는 곳에 식물, 채소, 나무도 잘 자라고 열매를 잘 맺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물이 번성하는 것인데 그 중심에 물이 있었습니다. 이를 영적 관점에서 보면, 에스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것이 사람을 적시고, 아라바 해까지 흘러 바다를 소성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죽은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번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영적 생명을 번성하게 하는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다섯째 날 궁창을 나는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였고, 바다의 물고기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고 하였고, 새들에게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물고기와 새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창조 속성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생육한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물고기의 번식력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물고기의 알의 숫자를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고등어, 콩치, 동태, 대구 등의 알을 보면,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이같이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특히,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의 번식력은 매우 왕성하다는 것을 그 알의 숫자가 알려줍니다.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가 땅 위의 새나 동물들보다 더 번식력이 더욱 왕성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물이 생물 번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번성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람의 번성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범죄하면서부터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 육적인 사람의 번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복된 것이었고, 다른 이방인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손을 번성시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복이었고, 여인들은 아이를 낳는 것이 그들이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541절에는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어떤 말씀입니까? 이는 곧 영적 출산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영적 출산이 시작되는 시대가 시작됩니다. 세상 존재물들의 번성 중 최고의 번성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실 때 주셨던 복보다 더 큰 복이 여기에 내려졌습니다. 이 영적 출산의 번식력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사건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잡은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생물 번성의 중심인 물속에 그물을 내렸더니 153마리의 큰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는 영적 출산의 숫자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말씀으로 출산할 수 있는 영적 출산의 숫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그 말씀의 씨만 있으면,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듯이 수많은 사람을 출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영적 출산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100개의 씨, 1,000개의 씨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영적 출산이 일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영적 출산을 할 때, 어떤 종류의 큰 물고기가 어떻게 잡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까지 알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몇 마리 잡히는지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할 일은 현재 믿음으로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일은 믿음으로 말씀의 씨를 뿌렸을 때 성취되는 믿음의 결과물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그 믿음의 결과물들을 생전에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그 말씀을 현실에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의 결과물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런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믿고 행동하면, 그 이후부터는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대에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도 있고,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성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현실의 세계에서 자꾸만 믿음이 결과물들을 보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믿음에 의미를 둡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그것에 의미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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